동성 군인 사이의 성관계를 무조건 처벌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합(주심 김재형 대법관)은 21일 군형법 위반(추행)으로 기소된 A 씨 등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남성 군인 A 씨와 B 씨는 근무시간 외에 영외에 있는 독신자 숙소에서 성행위 등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군형법 92조의6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재판에서는 동성인 군인들이 영외의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로 성행위를 한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1·2심은 “현행 규정은 영외에서 자발적 합의로 이뤄진 행위에도 적용된다”며 유죄를 인정해 A 씨에게 징역 4년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B 씨에게는 징역 3개월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동성인 군인 사이의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뤄지는 등 군인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 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현행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현행 규정의 대표적 구성요건인 ‘항문성교’는 성교행위의 한 형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문언만으로는 이성 간에도 가능한 행위”라며 “동성 군인 간의 성행위 그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이라는 해석이 당연히 도출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른 성행위를 한 경우와 같이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두 가지 보호법익 중 어떤 것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는 해석은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따라 동성 군인 간 성행위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를 인정한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다만, 조재연, 이동원 대법관 등 2명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은 침해되는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에 관해 그 자체로 처벌가치가 있는 행위라는 평가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선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판결 의미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