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고물가와 미국의 긴축정책,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환율 변동성 확대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한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2일 종가기준 달러 대비 원화 환율 1288.6원은 약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이날 환율은 7.2원 오른 달러당 1282.5원에 출발해 줄곧 상승세를 보였다. 장 중엔 2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달러당 1291.5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지난 사흘 동안 환율 변동 폭은 1∼2원 수준에 그쳤지만, 이날은 10원 이상 급등하며 변동 폭을 확대했다.
이 같은 환율 상승은 글로벌 물가 오름세 지속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한 긴축 기조,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가 기본적 배경이다. 이에 더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시장의 예상보다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난 게 이날 외환시장에 충격을 더했다.
전문가들은 외환·금융위기 시기가 아니면 역대로 도달한 적이 없었던 달러당 1300원 선 위로 오를 가능성까지 열어둬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달러당 1300원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라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시기는 연준의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위원은 “앞으로 한 달간은 변동이 심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달러당 1300원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화 강세가 전 세계적인 현상인 데다 이런 추세를 꺾을 만한 재료가 없는 상황이어서 당국이 개입하더라도 당장 원화를 약세로 전환하기엔 동력이 부족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 분위기에선 섣부른 개입 시도 시 외환보유고만 축낼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전월보다 85억1000만 달러 줄어든 4493억 달러다. 2개월 연속 줄었다. 적정 외환보유액에 정해진 건 없지만, 경제학계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보유액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아직 IMF(국제통화기금) 등이 권고하는 수준에 못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IMF가 연간 수출액과 시중통화량, 유동외채, 외국인투자잔액 등을 기준으로 산정한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은 약 6810억 달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환보유액 비중도 28%에 그친다.
미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성일종 정책위의장(국민의힘)은 최근 원내대책회의에서 “21일 열리는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통화스와프 의제가 긍정적으로 논의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2일 인사청문회에서 “우리가 기축통화국이 아녀서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국과 통화스와프 장치를 만들면 외환 안정 등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ㆍ미 통화스와프는 비상시 자국 통화를 상대국에 맡기고 달러를 빌릴 수 있도록 미리 약속하는 것이다.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효과가 있어 급격한 외화 유출로 인한 경제위기를 막을 수 있다.
미국과 통화스와프 체결은 지난 2008년과 2020년 두 번 체결됐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300억 달러 규모로 처음 체결돼 원ㆍ달러 환율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은 바 있다. 2020년 3월엔 미국의 선제조치로 600억 달러 한도로 체결돼 다시 한번 위기를 넘겼다. 이 계약은 지난해 9월 말 종료됐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GDP 대비 외환보유고는 홍콩과 싱가포르 대만 등과 비교해도 크게 낮은 수준”이라며 “한은에서 환율 위험이 크지 않다고 얘기하는 건 정말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환율이 1300원을 목전에 뒀다는 건 외환위기에 직면했다는 얘기이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적극적으로 통화 스와프 체결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