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자영업자 백 모씨(66)는 최근 불황을 맞아 30년째 해오던 음식점의 문을 닫았다. 자녀들도 다 커 더 이상 큰 돈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데다 나이가 들어 험한 한식점을 운영하기가 힘이 벅찬 탓이었다. 백씨는 음식점을 팔아 1억5000만원의 권리금을 얻었지만 당장 매달 300만~400만원 가량 들어오던 수입이 사라지자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본문
백씨가 가진 현금은 고작 2억원 가량. 금리가 낮아진 탓에 한달에 얻을 수 있는 이자 수익은 고작 63만원 남짓에 불과했다. 자녀들도 자신들 먹고 살기에 빠듯한 입장이라 용돈을 달라기도 어려웠다.
국민연금을 받긴 하지만 그것도 겨우 한달에 18만원에 불과해 연금 보험까지 다합쳐도 백씨의 한달 수입은 100만원을 채 밑도는 수준이다. 그러자 매달 40만원에 달하는 분당의 47평형 아파트의 관리비를 내기도 벅찼다.
이에 백씨가 생각했던 것은 자신의 친구들이 하던 상가 주택 임대사업이다. 즉 3~4층으로 구성된 점포 딸린 주택을 매입하면 1층은 상가로, 2층은 주택으로 각각 임대를 주면 매달 300만원 가량의 월세 수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특히 백씨는 자신의 음식점이 있던 서울 약수동의 4층짜리 빌딩 1층 80평 점포 임대료가 매월 350만원이었던 것을 생각해내자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여기까지 생각이 든 백씨는 점포주택의 주인이 된다는 자신의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백씨는 자신의 전재산 2억원에 분당 집을 어렵사리 10억원에 팔았다. 시세는 12억원이라고 하지만 12억원에 매물을 내놓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는 중개업자의 말에 돈이 필요했던 백씨는 과감하게 10억원이란 '헐값'에 분당 집을 팔았던 것이다.
그래서 모은 돈은 12억원. 이걸로는 서울의 점포주택을 사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 백씨는 아쉬운대로 인천 연수동의 한 3층 다가구 주택을 마련했다.
1층은 바닥면적이 40평 밖에 안돼 상가로 쓸순 없지만 가벼운 근린생활시설은 가능했다. 여기에는 우유보급소가 보증금 2억원에 월세 120만원을 내고 입주해 있었고, 2층은 20평짜리 투룸 두개로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는 각각 50만원, 45만원 씩 받고 있었다.
이렇게 백씨가 한달에 얻는 임대료 수입은 215만원이다. 30년 넘게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백씨는 갑자기 살게 된 다가구 주택단지 환경이 낯설었고, 좁아진 집에 생활도 많이 불편했지만 별다른 일을 안하고 매달 200만원이 넘는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백씨는 만족했다.
연금을 다합치면 거의 250만원 가량 되니 장사를 하던 시절에 비해 약간 모자란 수입이 들어오게 된 셈이다.
백씨는 이에 과감히 전재산 12억원을 올인, 꿈에 그리던 다가구 주택을 마련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백씨의 주택 1층 우유보급소가 가장 먼저 '사고'를 기록했다. 백씨가 입주한 첫달 임대료를 1주일 늦게 낸 우유보급소는 다음달부터는 아예 월세를 내지 않는다. 미수금이 많아 현금이 없다며, 2억원이나 되는 보증금이 있으니 거기서 까나가면 되지 않느냐는 게 우유보급소의 이야기다.
월세수입의 절반이 넘는 우유보급소에서 월세가 나오지 않자 백씨는 당장 생활고에 시달리게 될 판이다. 목구멍에서 손이 나오게 될 지경이 된 백씨가 우유보급소를 계속 닥달하자 우유보급소는 한달에 50만~60만원 씩 월세를 주면서 온갖 유세를 다하고 있다.
심지어 계약기간이 다시 1년이 돼가니 월세를 깎아야 되는 것 아니냐면서 우유보급소는 주변 40평 점포 시세가 90만~100만원 이라며 월세를 깎아줄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2층의 투룸도 백씨를 불안하게 한다. 투룸 두 곳은 월세는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내고 있다. 하지만 웬 고장이 그리 많은지. 지난 겨울에는 두 곳 다 보일러를 고쳐달라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20만원과 40만원 씩 60만원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 달엔 화장실이 막혔다는 방이 나와 배관까지 고치느라 무려 50만원이 들었다.
3월이 되자 아파트를 분양 받은 투룸 중 한 곳이 집을 비우겠다고 통보한다. 백씨는 '아직 계약기간이 몇달 남았으니 당신들이 계약자를 찾으라고 했지만 세입자는 직장에 가있는 동안 두시간 마다 백씨에게 전화를 넣어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난리다.
보증금을 안고 들어간 백씨에게 5000만원이라는 '거금'이 있을리가 없다. 백씨는 새로운 세입자를 찾기 전엔 계약금을 줄 수 없다고 모르쇠로 나가려고 하지만 5000만원이 없으면 잔금을 치를 수 없다는 세입자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백씨는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보증금 4000만원에 35만원짜리 월세를 얻을 수 밖에 없었다. 모자라는 돈 1000만원은 주택 담보대출로 겨우 마련할 수 있었다.
겨우 잠잠해지나 싶었더니 이번엔 월세 50만원을 내는 세입자가 나섰다. 임대차 계약기간이 끝나 계약을 갱신하려하는데 이 세입자도 임대료를 낮춰 줄 것을 요구한다.
이 세입자는 월세는그대로 낼테지만 보증금을 깎아달라는 것이다. 외창이 있는 곳의 조망이 옆 다가구주택 벽에 막혀 있다는 이유로 종전까지 월세가 5만원이 쌌던 옆집과 임대계약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게 이쪽 세입자의 이야기다.
그는 월세는 45만원으로 5만원 줄이는 대신 보증금을 3000만원만 하자며, 보증금 2000만원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자영업소에 돈이 들어갈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백씨는 난처해 죽을 지경이다. 이미 1000만원을 마련하느라 대출을 얻어 썼는데 또 2000만원을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하지만 주변시세가 그쯤에 형성돼 있어 백씨도 무시할 수 만은 없다. 백씨는 그제서야 다가구 주택 집주인 노릇도 굉장히 힘이 들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부동산 붐이 불 때 살던 단독주택을 개발해 원룸, 투룸 다가구 주택으로 개조하는 사업이 유행을 탔다.
안정적인 월세수입을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가구 주택 집주인 노릇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전세가 보편적인 아파트와 달리 세입자도 많고, 월세 납부 문제, 세입자 특성 등도 모두 고민해야하기 때문이다.
백씨는 단지 친구들 말만 듣고 시세도 약하고, 뜬금없이 계약금만 많은 세입자가 있는 주택을 생각없이 마련해 버렸다.
임대사업의 경우 시세차익을 노리는 매입보다 신경써야할 부분이 더 많다. 특히 다가구 주택은 10년만 넘어도 계속 고장이 난다는것도 아파트에만 살았던 백씨가 몰랐던 부분이다.
목돈이 없는 신혼부부 등 서민층이 주택임대로 많이 애용하는 다가구주택은 그만큼 관리가 어렵다. 심지어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계획에 따라 수요자가 서서히 줄고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