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간 소비량의 3% 수준...공급 다변화 의미 커
중동, 아시아와 더불어 정유시장서도 영향력 강화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카타르 국영 에너지 기업 카타르에너지와 미국 에너지기업 코노코필립스는 2026년부터 15년간 연간 200만 톤의 액화천연가스(LNG)를 독일에 공급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코노코필립스는 카타르에서 공급받은 LNG를 독일 북해와 동해가 합류하는 엘베강 연안의 항구도시 브룬스뷔텔로 운반, 독일에 공급하게 된다.
카타르가 독일에 LNG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으로 에너지 위기에 내몰린 독일이 3월부터 카타르와 협상을 벌인 끝에 이룬 성과다. 공급 규모는 독일 연간 에너지 소비량의 3% 수준에 불과하지만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처를 다변화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독일 전체 천연가스 소비에서 러시아산 비중이 55%에 달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번 계약은 독일 에너지 안보의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가치를 부여했다.
에너지 시장에서 영향력 확대를 꿈꾸는 카타르에도 이번 계약의 의미가 적지 않다. 세계 최대 LNG 수출국 중 하나인 카타르는 2027년까지 LNG 생산을 60% 늘려 시장점유율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그동안 카타르의 주요 수출 대상국은 한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에 몰려 있었는데 유럽 진출에도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사드 빈 셰리다 알카비 카타르 에너지장관은 “대독일 LNG 수출에 한도는 없다”며 “독일 에너지 기업 유니퍼, RWE와도 공급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카타르에너지는 최근 중국 국영 석유기업 중국석유화공그룹(시노펙)과도 27년간 연간 400만 톤 규모의 LNG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LNG 거래 역사상 최장기 공급이다.
카타르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은 정유산업 투자도 늘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산 석유 제품 수입을 줄이는 대신 아시아와 중동으로 눈을 돌린 영향이다. 서구권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석유 사용 급감에 대응해 정제 시설을 점진적으로 폐쇄해왔다. 최근 3년간 서구 국가들의 정제유 생산량은 하루 240만 배럴 감소한 반면 중동과 아시아는 250만 배럴 늘어났다. 중국이 자국 내 수요 물량을 맞추기 위해 첨단 정유 시설 투자를 계속했고, 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들도 거대 정유 공장을 계속 지었다.
또 올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서방의 에너지 대란을 부채질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유럽의 경유 재고는 계속 줄어 내년 봄 사상 최저치로 떨어질 전망이다. 그 결과 서방의 아시아와 중동 의존도는 더 커졌다. 유진 린델 FGE 대표는 “유럽과 미국이 러시아산 석유 제품에 등을 돌리면서 중동과 아시아에서 장거리로 운송되는 석유 제품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당장 치솟은 에너지 요금과 인플레이션에 치중하다 보니 장기 에너지 계획을 세우는 것도 벅찬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미의 중동과 아시아에 대한 의존도 커지는 추세다. 카리브해 정유소가 줄줄이 폐쇄됐고, 베네수엘라와 멕시코의 정유 시설도 정전에 따른 낮은 가동률로 생산량이 갈수록 줄고 있다.
올해 유조선을 이용한 석유 제품의 해상 운송은 최근 5년 평균치보다 3% 증가했다. 유럽의 아시아와 중동산 경유 수입이 늘어난 영향이다. 석유 제품이 유조선으로 장거리 수송될 경우 해상 운임료가 가파르게 뛴다. 결과적으로 전체 수입 비용도 늘게 된다. 서방이 장거리 운송이 불가피한 아시아와 중동에서의 수입에 의존한다는 것은 에너지의 전략적 취약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아시아와 중동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아시아와 중동은 기세를 몰아 더 공격적으로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예정이다. 2025년까지 아시아는 정제유 생산능력을 하루 300만 배럴, 중동은 230만 배럴씩 더 추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스타드에너지의 무케시 사데브 애널리스트는 “아시아와 중동이 점점 세계 에너지 공급처가 될 것”이라며 “정유제품의 동-서간 수출은 더 확고하게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