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제약바이오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노력이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일부 기업은 외형 성장에도 ESG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K-제약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ESG 경영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12일 본지가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에 대한 한국ESG기준원(KCGS)의 ‘2022년 ESG 평가’를 분석한 결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87개 가운데 A등급 5곳, B+등급 18곳, B등급 8곳, C등급 28곳, D등급 28곳으로 확인됐다. KCGS는 상장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지속가능경영 강화를 위해 한국거래소 아래 2002년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매년 평가를 통해 S, A+, A, B+, B, C, D등급으로 평가한다.
올해 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팜, 동아쏘시오홀딩스, 동아에스티 등이었다. 반면 지난해 A등급이었던 한미약품, 한미사이언스, 일동홀딩스, 일동제약, 한독, 종근당, 에스티팜 등 7곳은 B~B+로 하향 조정됐다.
ESG 경영이 잘 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은 삼성, SK 등 그룹 제약바이오 계열사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국내외서 ESG 경영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올 9월 글로벌 지속가능성 조사기관 에코바디스의 ESG 평가에서 상위 5% 기업에 부여되는 골드(Gold) 등급을 받았다. 이달에는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 월드지수에 편입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외형 성장과 ESG 경영을 동시에 이룬 사례로 꼽힌다. 올해 3분기 누적 매출 2조358억 원을 달성했고, 내년 4공장이 완전 가동될 경우 생산능력이 총 60만4000리터에 달해 글로벌 위탁생산개발(CDMO) 업계에서 압도적 1위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대한민국 1호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SK바이오사이언스는 올해 첫 ESG 보고서를 발간하며, 전 부분에서 A등급 이상을 받았다. 백신 개발과 함께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ESG 경영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6일에는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최초로 기후 변화에 따른 비즈니스의 지속성과 대응 전략은 담은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협의체보고서(TCFD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배구조부터 전략·위험관리·지표와 감축 목표 등을 담겼다.
지난 7월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발간으로 ESG 경영 고도화에 나선 SK바이오팜의 실천도 눈에 띈다. 지난해 전력 사용량의 54%를 신재생 에너지로 공급받고, 탄소배출량을 2030년 33%, 2035년 66%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전통 제약기업 중 유일한 A등급은 동아에스티와 지주사 동아쏘시오홀딩스다. 멸종위기 동물 보호를 위한 ‘SAVE 2 SAVE’ 캠페인, 취약계층 골다공증 환자 치료제 지원, 소아암 백혈병 환자 대상 기부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결과다. 또한 생산공장마다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한 데 이어 사업 전반에 친환경 정책을 진행 중이다. 동아쏘시오홀딩스도 올해 3분 누적 매출 7537억 원으로 전년 대비 16.35% 성장했다.
이번 평가에서 B+등급을 받은 회사는 유한양행·GC녹십자·종근당·대웅제약·한미약품 등으로, 올해 외형성장이 확실한 기업들이다. 유한양행과 GC녹십자, 종근당은 3분기 만에 1조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고, 대웅제약과 한미약품도 올해 연매출 1조 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광동제약은 올해 3분기 누적 매출 1조 원을 기록했지만, ESG 평가는 C등급이었다. 특히 환경 부분에서 최하 수준인 D등급을 받았다. 또 씨젠, 동국제약, JW중외제약, 동화약품, 일양약품, 부광약품 등도 C로 평가됐다.
셀트리온 그룹의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는 B, 셀트리온제약은 D등급으로 평가됐다.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셀트리온 1조7733억 원, 셀트리온헬스케어 1조4311억 원, 셀트리온제약 2979억 원이다. 특히 가장 낮은 ESG 경영 평가 D등급을 받은 곳은 차바이오텍과 제일약품, 현대약품, 삼진제약, 삼일제약 등이었다.
업계에서는 제약바이오기업의 경우 그동안 오너 중심 경영체제 등으로 타 산업군에 비해 ESG 경영 도입이 느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다만 최근 2~3년 업계는 글로벌 진출을 위해 경영 체계 전반에 ESG 경영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ESG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요소”라면서 “아직 제약·바이오산업의 ESG에 대한 평가가 높지 않다. 신약을 개발하고 의약품을 공급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하는 측면이 ESG 평가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따른다. 양질의 의약품 개발과 공급이라는 산업의 본질에 ESG 부문별 개선이 이뤄진다면 제약바이오산업의 ESG는 향후 어떤 산업군보다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