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상담소] 탈출구 없는 노년의 빈곤

입력 2022-12-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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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서울 서대문구보건소 사회복지사

퇴근시간 무렵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길동 씨였다. 경제적인 문제로 요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밥맛 살맛을 모두 잃어버린 그인지라 걱정이 많았었는데 연락이 온 것이다. 반가움 반 걱정 반의 마음은 이내 걱정으로 기울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술 마신 사람처럼 그는 혀가 꼬여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만 있다 15일 만에 외출을 하였다는 그는 바깥세상으로 나와 발이 가는 대로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술을 마셨다고 했다.

은행 대출금 상환을 두고 빚 독촉을 받던 그는 한동안은 카드 돌려막기로 버텼는데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고, 대출금에 카드값 상환까지 감당을 할 수 없다보니 머릿속은 온통 신변 비관뿐이고 심리적 압박감과 불안함에 술 생각도 났을 것이다. 그는 그동안 자기 때문에 힘들게 해서 미안하고 신경써줘서 고마웠다며 인사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전에 극단적 선택 시도력이 있었던지라 느낌이 싸했다.

계속 전화를 걸어 통화를 시도했지만 신호만 갈 뿐 연결이 되지 않아 초조해졌다. 길동 씨의 안전 확보가 우선이기에 경찰에 연락하고 자살 모니터링을 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남기고 조치를 취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도 커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적을 깨는 벨소리에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수화기를 들었다. 경찰서였다. 투신 직전에 길동 씨를 구조했다고 했다. 긴장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60대 중반의 길동 씨는 코로나19로 인해 일을 할 수 없었고 건강이 악화되며 간간히 하던 일마저 손을 놓은 후 소득이 전무했다. 그는 하우스푸어라 돈을 융통할 곳도 없다. 육십 평생 힘들게 일해 장만한 집은 서류상으로만 내 집일 뿐 애물단지나 다름없고 복지사각지대이다 보니 정부 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다. 은행이나 카드사의 빚독촉만 없어도 숨통이 트이련만, 집을 처분해서 갚을 생각도 있지만, 압박과 스트레스만 줄 뿐 개인 사정 따윈 들여다볼 생각조차 없으니 경제적인 빈곤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됐다.

노인이 가장 흔히 겪는 어려움이 빈곤과 질병이라 했는데, 고령화로 인해 꽤 오래전부터 노후준비라는 말이 강조돼왔지만, 과연 노인인구 중 몇 퍼센트나 걱정 없는 노후를 준비했을까? 노인이 되는 것은 시간적인 문제일 뿐 누구나 겪어야 할 현실인데, 나부터도 노년의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길동 씨들이 있는데,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기 전에 그들의 숨통을 틔워줄 제도적 대안 마련, 지혜가 필요하다.

김현주 서울 서대문구보건소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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