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점에서 예산안 편성 및 심의 과정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2024년 예산 편성 과정이 바로 1월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먼저 국가재정법을 살펴보자. 기획재정부는 3월 중 ‘예산편성지침’을 세워 각 부처에 통보하고, 9월까지 예산안을 확정해서 ‘국회에 제출’한다. 이렇게 제출된 예산안은 12월 2일까지 ‘국회 심의’를 거쳐 확정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때였던 지난해 3월 작성된 ‘2023년 예산편성지침’의 기본방향은 경제도약과 민생안정 등을 위해 ‘필요한 재정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재정의 역할’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모든 부처 예산의 방향이 정해진다. 지역균형발전, 아동·청년·여성·농어민 등 맞춤형 사회안전망 강화, 서민 생활물가 안정 지원 등 ‘국민경제’에 방점을 두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어 윤석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3년 예산안에서 ‘재정의 역할’은 ‘국민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바뀐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론’ 예산이다. 예산안의 수입에서는 대기업 법인세, 자산가 종부세, 고소득자 소득세 등을 감세했다. 이에 상응한 지출에서는 서민경제와 맞닿아 있는 국토부의 취약계층 임대주택 관련 사업, 중기부의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 관련 지원 사업들이 줄었다. 예산 감소 최대 부처는 국토교통부로 임대주택 사업비가 크게 줄었다. 분야별로는 사회복지 분야로 고용 및 주택 부문이 주로 감소했다. 정리하자면 수입이 주니 동시에 지출도 줄어들지만, 수혜자가 뒤바뀌면서 ‘재정의 역할’은 상반되게 된다. 쉽게 말해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 수입이 줄어드니 그만큼 서민들의 복지 지출을 줄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예산편성지침’을 만들었던 거대 야당이 개입한 2023년 국회 예산안 수정안은 다시 바뀌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민경제’로 돌아가지 못했다. 전세 임대, 지역사랑상품권 지원, 포항 재해피해 중소기업 지원, 노인일자리 등이 일부 증액되었지만 감액 편성된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 예산도 다시 살리지 못했다. 법인세 인하를 받아들여 수조 원의 수입 감소가 추정되며, 소상공인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역화폐 예산은 절반 정도만 살아남았다. 결국 여야 예산 전쟁의 끝은 도로·철도 및 지역개발 등 지역구 예산을 전리품으로 챙긴 것뿐이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문제가 된 것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과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 설치’이다. 내국세의 20.79%를 배분하는 교육교부금이 내국세의 증가에 따라 늘어나는 반면 학령인구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교부금 조정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올해 예산안에 반영되었다. 국회 예산정책처조차 그 타당성을 면밀히 분석하지 못했기에 졸속 개편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초·중등 교육에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삭감 금액(교육세 1조5000억 원)이 대학 지원 목적으로 신설되는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고특회계) 재원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동생 돈 뺏어 형에게 준 꼴’이라는 혹평이 나온다.
무리수를 둘 만큼 당장 필요했다면 그야말로 획기적으로 새로 설계했어야 한다. 대학 등록금이나 지방대학 등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신규 사업이 편성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고특회계에서 지방대학 지원 등 신규 사업은 미미한 수준이고 나머지는 교육부 기존 사업을 증액한 결과가 되었다. 기존 예산의 수혜자인 대학 재단과 교수 등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여지가 크며 초·중등 대 고등, 대학생 대 대학당국, 지자체 대 지방교육청 등 교부금과 고특회계를 둘러싼 다툼은 심화할 것이다.
2024년 예산편성 과정이 1월 말부터 다시 시작된다. 코로나19 여파로 금리와 물가는 오르고 국민경제는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제 활성화’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지 말고 나라 곳간을 열어 국민들에게 적극적인 재정 서비스를 펼쳐야 할 때이다. 또한 예산의 수혜자 즉 당사자 중심의 예산 설계가 시작 단계부터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