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혁신경쟁법ㆍ팹스법에 로비 금액 커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규제 대응으로 분석
삼성ㆍSK 북미 대관 조직도 변화
국내 반도체 업계는 미국 의회의 법안 중에서도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와 관련한 것을 중심으로 합법적 로비를 집중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미국 비영리 정치감시단체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그룹은 미국 혁신경쟁법(USICA)에 가장 많은 로비 자금을 쓴 것으로 분석됐다. 이 법안은 미국 내 반도체 연구 지원 및 생산 보조에 520억 달러(약 65조 5300억 원)를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 연방하원이 지난해 1월 발의해 2월 통과시켰다.
두 번째로 많은 로비 자금이 투입된 반도체증진법안(FABS Act)은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법으로,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의 세액공제를 지원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세액공제로 10년간 240억 달러(31조3440억 원) 규모의 지원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그룹이 미국의 반도체 법안에 로비를 집중한 것은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유예조치와 연관이 깊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발효된 이 법안으로 각각 중국 시안과 다롄·우시에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핵심 반도체 장비를 중국으로 들여오기 어려워졌다. 이와 관련해 현재는 미국 상무부로부터 1년간 유예를 받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는 한시적인 조치로 올 10월 재유예가 되지 않을 경우 중국 현지에서 생산 차질을 빚을 공산이 크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에 극자외선(EUV) 장비 반입을 시도하다 미국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컨설팅업체 욜인텔리전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 D램 생산량의 50%가량이 중국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최근 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의 요구대로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동참하기로 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로서는 부담이 더욱 커졌다. 네덜란드 ASML, 일본 도쿄일렉트론(TEL) 등도 중국에 첨단장비를 공급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최근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이면서 국내 기업에도 이와 같은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도 크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양사는 로비 금액을 대폭 늘리는 데 이어 조직에도 변화를 주면서 대미 대관 업무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삼성전자는 미국 정부와의 접점을 높이기 위해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를 북미법인 대외협력팀장 겸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마크 리퍼트 부사장은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당시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 수행에도 함께했었다. 권혁우 전 산업통상자원부 미주통상과장도 반도체 부문 대관 상무로 영입해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대관 업무 조직을 강화했다. SK그룹은 지난해 말 유정준 SK E&S 부회장이 10년간 맡아왔던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신설된 북미 대외협력 총괄 부회장직을 맡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