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탈 때가 아직 안 됐어요.”
“골프투어 때문에 미리 왔습니다.”
82세 당뇨환자가 골프투어?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오는 환자로 골프 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안 이후부터 달리 보였다. 아내분은 고혈압 환자다. 부부가 골프카트도 타지 않고 18홀 내내 걸으며 친다고 했다.
나는 80세가 넘어도 골프를 칠 수 있을까? 아내는 처음부터 끝까지 카트를 타는데? 이제 그 부부는 우리 병원에 다니는 환자이면서 내 골프 롤모델이기도 하다.
친구 A는 KT에서 잘나가던 직원으로 1997년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을 하고 자영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당뇨가 심해 지금은 1주일에 두 번씩 신장투석을 하고, 한쪽 눈을 실명했다. 친구 B는 술을 좋아한다. 친구들끼리 등산모임을 만들어 매달 등산을 하고 있다.
B는 하산 후 뒤풀이 술을 좋아해 취하기 일쑤였고 그 때문에 종종 트러블이 생겼다. 옆에서 계속 뭐라 하자 술도 맘대로 못 먹느냐며 모임에서 나갔다. 지금은 혈당이 250에서 왔다 갔다 한다며 어떻게 하면 되냐고 종종 전화를 하고, 내 대답은 예나 지금이나 술 끊으라는 잔소리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는 93세로 당뇨환자다. 워낙 철저한 분이라 당뇨 관리도 마찬가지고, 덕분에 기억력은 아들 뺨치고 바깥출입도 웬만큼은 하신다. 나는 여러 면에서 아버지를 닮았기에 당뇨병도 올 거라 생각하고 있다.
식전 혈당이 105 정도로 아직은 약을 먹을 단계는 아니다. 하얀 음식(흰쌀밥, 밀가루, 설탕, 지방) 피하기, 컬러풀한 음식 먹기, 소식, 운동 등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하고 약이 좋다 해도 당뇨뿐만 아니라 모든 병은 평소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경과가 확연히 달라진다.
90세가 넘어도 정정할 수 있고, 80세에도 골프를 칠 수 있고, 환갑을 갓 지났으나 콩팥이 망가져 투석을 할 수도 있고, 혈당 조절이 안 돼 고민을 할 수도 있고, 아예 병이 안 올 수도 있다.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