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전기·가스 요금을 5.3%씩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전기요금은 킬로와트시(kWh)당 8원, 가스요금은 메가줄(MJ)당 1.04원씩 오른다. 4인 가구 기준으로 보면 전기요금은 월 3000원을, 가스요금은 월 4400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2분기 요금 인상이 한 달 반쯤 뒤늦게 결정된 것이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는 전기와 가스를 팔면 팔수록 더 크게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 세상의 그 어떤 사업도 이렇게 해서는 명맥을 유지할 수 없다. 하지만 어제 인상도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공공요금 인상에 분노할 민심 눈치를 살피고, 물가 불안에 미칠 파장도 고려하느라 미봉책에 그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에 앞서 한전은 25조7000억 원, 가스공사는 15조4000억 원 규모의 자구안을 내놓았다. 이 역시 경영정상화를 위한 근본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한전 경영정상화를 위해 올해 전기요금을 kWh당 52원가량 인상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 지 오래지만, 1분기(13.1원 인상)에 이어 2분기 인상 폭도 미흡한 수준이니 갈 길이 멀다. 가스공사 역시 1분기 말 누적미수금만 11조6000억 원에 달한다.
한전과 가스공사가 이 꼴이 된 것은 전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드라이브 탓이 크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문 정부 출범을 전후한 2017년 5월과 6월 당시 대선 공약인 탈원전을 추진할 경우 국민이 추가로 부담할 전기요금이 2018년부터 2030년까지 13년간 약 140조 원에 달한다고 보고했음에도 문 정부는 이를 뭉갰다. 원전 수명 연장 정책을 펴는 것이 탈원전에 비해 513조 원의 막대한 경제적 편익을 준다는 과학적 연구 논문이 2019년 나왔는데도 당국이 이를 숨기기에 급급한 사례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에 더해 국제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전기·가스료 인상 압박이 가중되는데도 요금동결 기조를 지속했다. 포퓰리즘에 빠져 국가의 병을 더할 수 없이 키운 것이다. 실로 무책임한 탈원전 폭주였다.
윤석열 정부도 책임이 없지 않다. 지난겨울 난방비 고지서 폭탄 파문에 놀라 가격 신호의 정상 작동을 막지 않았나. 한전과 가스공사 부실은 결국 사용자 요금이나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땜질 처방만 계속 내놓을 게 아니라 더 늦기 전에 근본 처방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원가에 연동하는 공공요금 가격 체계를 구축해 정치 개입과 간섭 여지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그렇게 해야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국가에서 1인당 에너지 소비는 세계 4위라는 불명예도 벗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