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6월부터 시작해 7, 8월은 환자가 많지 않아 소아청소년과는 비수기, 환자가 없는 철이다. 달리 말하면 이때를 이용해 밀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콘서트를 보러 가는 등 비교적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핸 예외다. 쉴 틈이 없다. 수족구병이야 여름에 유행하는 병이니 그렇다 치고, 온열 질환도 더우면 올 수 있으니 넘어가고, 코로나도 최근 다시 늘어나는 추세니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최고로 더운 8월에 독감 환자가 꾸준하다는 거다. 독감검사 키트는 가을에 미리 사서 겨울에서부터 봄이 되기 전까지 쓰다가 날씨가 따뜻해지면 더 이상 쓸 일이 없어 반품하거나 폐기를 한다. 올해는 8월에도 검사키트를 계속 사고 있다.
에이 설마 독감이겠어? 하다 뒤늦게 검사를 하고 독감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체 왜 이럴까? 추울 때 유행하다가 온도가 올라가면 독성을 잃는 독감바이러스가 더위에 적응할 수 있게 변이라도 일으킨 걸까? 저출산에 저수가에 소아청소년과가 점점 설 땅을 잃고 있다지만 아이들은 갈수록 더 자주 아픈 것 같다.
아이들을 진료하다 문득문득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문제, 극심한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적인 자연재해, 전쟁, 점점 커지는 빈부격차, 초등생들이 의대진학 학원을 가는 왜곡된 교육, 빈발하는 흉기난동이 떠올라 ‘장차 이 아이가 커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모두가 한데 뭉쳐도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 앞에서 진영으로 나뉘어 정쟁이나 하고 있으니…. 베이비붐 세대가 부모보다 잘사는 마지막 세대가 될 거라는데, 이 말이 틀려 우리 아들딸이, 진료를 받으러 오는 꼬맹이들이 더 잘사는 세대가 됐으면 좋겠다.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