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등 4개 의·약 단체는 17일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와 관련한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해 청구 간소화를 빙자한 의료정보 축적을 통해 국민에게 불이익을 가져올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실손의료보험금이 진료 후 자동으로 청구되는 ‘실손 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은 올해 10월 의료계의 반발을 딛고 14년 만에 통과됐다. 내년 10월 25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날 의약단체들은 “개정법률은 환자의 진료비 내역뿐만 아니라 민감한 의료정보가 담긴 개인정보가 보험신용정보시스템(ICIS)에 누적 관리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라며 “국민의 민감하고 소중한 의료정보를 취득해 활용하고, 요양기관의 자율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위헌소송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미 선진국에선 일반 개인정보 보호 규정(GDPR) 등으로 환자의 의료정보를 전자적 프로파일링(digital profiling)을 규제하고 엄격히 다루고 있다”라면서 “진료비 세부산정내역 및 진료 기록 등 민감 정보가 무분별하게 민간보험사에 축적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라고도 경고했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금융위원회는 “앞으로 병원 진료 후 원스톱(One-Stop)으로 실손보험금 전산청구가 가능하게 된다”라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의약단체는 “‘대통령령으로 정한 보험금 청구와 관련된 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으로 전송’한다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마치 실손보험금 청구를 요양기관이 대신해 청구하는듯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진료정보 전송 이전에 환자의 동의 여부 절차에 대한 구체적 시행방안을 포함한 규정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보험업법 개정 없이도 요양기관과 전자차트 회사가 협업해 청구서류 전송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모든 요양기관에 강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일부 의료기관은 핀테크 업체 등을 이용해 관련 자료를 현재도 전송할 수 있다.
산업계도 우려의 시각을 보였다. 전진옥 의료IT산업협의회 회장(비트컴퓨터 대표)는 “수혜자가 환자이고 실손보험을 청구해야 할 당사자가 본인인데, 그 행위를 의료기관에서 대행해줘야 할 의무가 있나”라며 “실손보험 청구 절차, 방법 주기 등이 갖춰지지 않는 상황에서 의무화만 한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의료기관에 의무를 부여한다면 행정 처리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갈 것”이라고 염려했다.
노주현 유비케어 전략기획실장은 “이미 기존 IT업체들이 표준화 작업을 진행했다. 새로 시스템을 갖춘다면 노하우나 기술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민간에서 자율적인 경쟁을 통해 환자들이 훨씬 더 나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게 환자와 의료계를 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결국 보험료 인상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지금도 보험회사의 손해율이 130%를 넘는 상황이다. 실손보험 소액청구 포기 건이 많다고 개정했는데, 결국 보험료가 인상되지 않겠는가”라면서 “환자의 건강보험 정보가 충분히 누적되면 갈수록 보험회사가 돈이 되는 환자만 골라서 가입 받을 위험성이 있다”라고 언급했다.
4개 의약단체는 “요양기관을 이용하는 환자들이 이번 보험업법 개정으로 인해 피해 보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번 개정안 본회의 통과 과정의 문제점을 국민께 공유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