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저로 파격 보수 인하!”
지난주 한 자산운용사 유튜브에 게시된 한 광고 문구다. 자사의 미국 대표지수 상장지수펀드(ETF)의 운용보수를 연 0.05%에서 0.0099%로 낮췄다는 내용이었다.
말 그대로 ‘파격적’이다. 1억 원을 투자해도 투자자는 수수료로 9900원만 부담하면 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투자하고 싶다면 미국에 상장한 ETF에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 이 ETF 수수료가 더 낮을 정도다. 미국 자산운용사 스테이트 스트리트(SSGA)도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ETF ‘SPLG’의 수수료를 0.02%로 낮췄지만, 해당 ETF가 더 저렴한 셈이다.
평소 투자를 고려했던 투자자라면 즐거운 소식일 수 있다. 그러나 수수료 인하가 발표된 날, 소식을 들은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이러다 다 죽어요”라며 내게 하소연했다. 자세한 설명조차 덧붙이지 않은 날것 그 자체의 발언이었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이해되는 말이었다.
자산운용업계에서 수수료 인하 경쟁이 굳어진 지는 한참됐다. 한쪽이 수수료 0.09%를 내걸면 이를 본 다른 한쪽은 0.08%를 내거는 식이다. 낮아지는 수수료에만 집중하다 보니 운용사별 ETF의 개성은 사라져갔다. 비슷한 자산군과, 획일적인 운용 방식에 수수료만 다른 상품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게다가 자산운용사들은 수수료를 인하한 운용사에게 투자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더라도 수수료를 인하해야 했다. 그렇게 투자자를 뺏기면 수익이 줄까 봐 수수료를 인하하고, 수수료를 인하하면 또다시 수익이 줄어드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실제 지난해 수많은 ETF가 상장했음에도 자산운용사들의 수수료 수익이 전년보다 2% 넘게 준 것이 이를 방증한다.
중소형 자산운용사는 근심이 더욱 깊어졌다. “돈 없어서 서럽다”는 반응으로, 수수료 경쟁에 쉽게 뛰어들 실정도 안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매에서 돈 많은 사람이 아무도 올라설 수 없는 값을 외쳐버리면 그 사람이 원하는 물품을 가져간다”며 “경매라면 출혈 경쟁이 당연하지만, 우리 업계에서 그러면 다 같이 죽자는 것밖에 안된다”고 했다. 상품 개발 비용으로도 빠듯한 이들에게 수수료 인하 경쟁은 눈 뜨고 불구경하는 격인 셈이다.
수수료 인하 전쟁이 격화할수록 대형 자산운용사에 점유율 쏠림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자명하다. 또 보수 인하에 초점이 맞춰지면 독창적인 상품과 안정적인 운용 전략을 개발하는 게 뒷전이 될 수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투자자에게도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물론 인하의 인하를 반복하는 이 경쟁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는 아직 모른다. 대형 운용사들이 시장 논리에 맞게 자본력을 투입해 투자자 혜택을 늘린 것으로 끝날 수 있을까. 누가 이기나 끝까지 가보자는 파국의 서막이 되진 않을지 우려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