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주택 청약 '누더기' 벗고 새 옷 고민할 때

입력 2024-10-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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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1978년 제정된 이후 변경된 횟수다. 지금까지 169번 변했고 입법 예고된 '중형 빌라 1채 무주택 인정'이 시행되면 170번을 채우게 된다.

1년에 3~4번씩 덧칠하거나 빼다 보니 누더기가 됐다. 내용도 복잡해져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헷갈리기 일쑤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도 때때로 다시 한번 확인해봐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보습학원에 다녀야 할 정도"란 한 정치인의 비판은 과장이 아니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5월 기준으로 발간한 '주택청약 FAQ'는 241페이지에 480개의 질의응답이 들어있다. 2022년 발간 때보다 20개가 늘었다. 아주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다수의 사람이 자주 묻는 질문만 500개에 달한다는 얘기다. 한국부동산원은 2022년부터 '주택청약의 모든 것'이란 책을 매년 내놓고 있다. 284페이지 분량이다.

책 한 권이라도 소설처럼 그냥 읽어 내려가는 게 아니라 복잡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숙지하는 것은 생업이 있는 보통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실수로 청약 당첨이 취소되는 사례가 속출한다. 국토부가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청약 당첨 후 부적격으로 판정된 사람은 총 8만71명이다. 연평균 1만6000명 정도로 연도별 당첨 후 부적격자 비중은 5~11%가량 된다.

부적격자 발생 이유는 무주택 기간 산정 오류, 세대원 주택 소유 여부 착오, 거주지역 선택 오류, 가구주 여부 오류 등이다.

부동산원이 2021년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부적격 당첨 취소 사유 중 '청약가점 오류'가 70% 이상으로 압도적이었다. 주 자격을 잘못 알았거나 입력을 잘못해 당첨이 취소된 것이다.

적어도 100명 중 5명, 많게는 10명 이상이 부정행위가 아닌 복잡한 제도 탓에 원하는 집에서 살 기회를 잃고 있는 셈이다.

부자 부모로부터 십수억 원 이상의 지원을 받는 사람만 혜택을 본다는 '금수저 특공', 무순위 1가구를 차지하기 위해 300만 명 가까이 몰려들기도 하는 '묻지마 줍줍' 광풍 등의 부작용도 노출되고 있다.

위장 전입을 부추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도 문제로 지적된다. 가만히 있으면 청약 당첨이 안 될 게 뻔한데 성인군자처럼 양심만 지킬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드러난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주택 청약 제도를 다시 손볼 것이다. 하지만 관련 내용만 당장의 요구에 맞춰 바꾸는 방식이면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이미 170번 이뤄진 땜질과 마찬가지의 땜질을 한 번 더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다. 눈앞에 돌출된 문제를 풀려고 내놓는 임시방편식 대응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주택 청약 제도 전면 개편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새로운 주택 청약 제도는 쉽고 단순해야 한다. 그래야 수백 개의 질의응답이나 책을 읽으며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어이없는 실수로 집을 마련할 기회를 날리지 않을 수 있다.

아울러 실수요 무주택자가 최대한 혜택을 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투기를 막고 무주택자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게 제도가 마련된 배경이다.

개편된 뒤에는 이런 관점에서 벗어난 손질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제도의 본래 취지를 벗어나 정치적 이해나 다른 정책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다시 누더기 꼴을 벗어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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