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리스크 시달리는 수에즈운하...강력해진 ‘모래폭풍’도 복병 [기후가 삼킨 글로벌 공급망]

입력 2024-10-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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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4-10-20 17:04)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①-3. 수에즈운하, 기상이변에 지정학적 리스크 겹쳐 역할 상실

후티 반군 공격에 통행 선박 '뚝'
40도 폭염, 운하 운영 큰 '복병'
14일 더 걸리는 희망봉 우회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름길’ 항로인 수에즈운하에 먹구름이 꼈다. 홍해 안보 이슈가 불거진 지난해 말 이후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컨테이너선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지정학 리스크 해결도 요원하지만, 더 큰 ‘복병’은 기상이변이다. 이상기온이 중동 지역에서 발생하는 모래폭풍을 강력하게 만들어 선박의 운하 통과를 방해하는 일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글로벌 무역의 12%, 컨테이너 물동량의 30%를 담당하고 있는 수에즈운하에 비상이 걸리면서 세계 경제도 시계제로 상태에 놓였다.

수에즈운하청(SCA)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갈등이 시작된 작년 말 이후 올해 4월까지 수에즈운하 통과 선박 수는 전년 대비 66% 줄었다. 하마스 지지를 표명한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통과 선박을 공격하며 위험을 고조시킨 여파다. 화물과 유조선이 각각 71%, 61% 감소했고, 컨테이너선은 90% 급감했다.

회복은 더디다. 글로벌 주요 선사들은 여전히 수에즈운하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고 있는데 평균 14일 더 소요된다. 항로 우회는 부대 비용 상승으로 직결된다. 보험료가 상승하고 선원 인건비도 높아진다. 독일 선주협회(VDR)는 선박 한 대 당 100만 유로(약 14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추산했다. 운항 일수가 늘면서 탄소배출량이 증가해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극심한 기상이변은 수에즈운하를 마비시키는 또 하나의 잠재적 변수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기온 상승과 가뭄으로 중동 지역에서 캄신(Khamsin)이라 불리는 모래폭풍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40도를 웃도는 이상고온이 지속되면서 토양이 건조해져 모래폭풍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통상 1년에 1~2번에 불과했던 대형 모래폭풍은 최근 두 달 새 9번 발생했다. 향후 10년 내 연간 최대 300번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모래폭풍은 가시성을 악화시키고, 모래퇴적률을 증가시켜 선박 운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2021년 3월 23일 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의 좌초는 예고편이었다. 시속 74km의 모래폭풍이 불면서 7억 달러 규모 상품을 실은 ‘에버기븐호’가 엿새간 수에즈운하에 좌초됐다. 세계 무역에 미친 피해 규모만 600억 달러(약 82조 원)에 달했다.

당시 사건 전후로 이집트엔 섭씨 44도를 웃도는 폭염이 지속됐다. 토양이 건조해졌고, 좌초 당일 강한 한파가 몰아치면서 모래폭풍을 만들어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제트기류의 비정상적 패턴(QRA)’ 현상이 극단적 기상이변을 심화시켰다고 분석한다. QRA는 북극의 급속한 온난화가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데, 북극과 적도 간 온도 차이가 감소하면서 제트기류 움직임이 왜곡돼 극단적 기상현상을 장기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은 더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집트 전 지역의 기온은 기후변화로 100년 전보다 1도 올랐고, 연간 강수량도 최근 30년간 약 22% 감소했다. 45도에 육박하는 폭염 발생 빈도가 2050년까지 두 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2100년까지 해수면이 최대 1m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은 해안 범람 우려까지 키우고 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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