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관리 빠진 '반쪽' 해법만
1·2세대 실손의료보험 가입자,
자부담 큰 상품으로 승환시키나
#. 최근 실손의료보험 관련 기사를 접한 직장인 김 모씨는 곧바로 가족 단체 카카오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1·2세대 실손보험을 4세대 상품으로 전환하면 보상금을 준다는 전화가 와도 절대로 갈아타지 말라”는 당부였다. 그는 보상금을 받더라도 본인 부담률이 높은 상품으로 변경하는 것보다 부모님들이 현재 가입돼 있는 1세대 실손보험을 유지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보험료는 4세대가 비싸지만 병원 갈 횟수가 많아지는 연세니 만큼 기본 질병과 상해 보장, 각종 진단금 특약들이 탑재돼 있어 보장 범위가 큰 1세대가 부모님들께는 더 낫다고 본 것이다.
이달 말 비급여·실손보험에 대한 대수술 결과 발표를 앞두고 터진 탄핵 정국에 문제의 핵심 열쇠인 비급여 관리 문제를 풀지 못하게 됐다. 과거 4세대 실손보험이 등장하면서 보험료 할인을 미끼로 상품 전환을 권유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계약 재매입과 자기 부담률이 높은 5세대 상품 출시에만 초점을 맞춘 ‘반쪽짜리’ 대책만 제시될 전망이다. 손해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고객 보장만 축소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의사 관련 단체인 대한병원협회와 대한중소병원협회, 국립대학병원협회는 최근 의료개혁특위(의개특위) 참여를 중단하기로 했다.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후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에 ‘전공의 등 이탈 의료인을 처단한다’는 내용이 담긴 탓이다.
의개특위가 잠정 중단했지만 주체가 보험사, 금융당국인 실손의료 개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 상황 점검 회의에서 “이미 발표한 정책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소상공인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부담 완화, 실손보험 개혁 등 12월 중 발표하기로 한 대책도 일정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나온 실손보험 개혁안은 자기 부담률을 더 올린 5세대 상품 출시와 실손보험 재매입이다. 실손보험은 판매 시기와 보장구조에 따라 △1세대 △2세대 △3세대 △4세대 △유병자 △노후 등으로 나뉘는데, 1세대와 2세대 실손의 경우 자기 부담금이 적어 손해율이 높은 경향이 있다. 이에 과거 1·2세대 가입 계약자들을 4세대나 5세대 상품으로 갈아 태워 손해율을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의료계의 의개특위 이탈로 과잉진료와 실손보험금 누수의 주범인 비급여 진료의 개선 방안을 찾기가 어려워지자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당 제도를 통해 보험사 이미지가 악화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보험사가 회사의 이익만을 위해 소비자를 희생시키는 것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일각에선 수긍할 고객도 적고, 실질적인 효과도 없을 것이라는 예상도 제기된다. 실제 4세대 실손보험이 처음 등장했을 때 1~3세대 가입자가 4세대로 전환하면 1년간 보험료를 50% 할인해 줬지만, 이를 선택하는 가입자는 극히 적었다. 4세대 손해율도 급등했다. 올해 상반기 4세대 실손보험 손해율은 130.6%로, 2년 전 82.8%, 1년 전 115.9% 대비 크게 상승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보험 영업 채널에서 벌어지는 승환계약에 대한 문제는 엄정히 대응하면서 정작 실손보험에서는 고객 갈아타기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 정국 혼란으로 의료쇼핑과 실손보험 누수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인 비급여 관리마저 요원해져 답답하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