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25%→최대 920% 반덤핑 관세 요구
관세 인상 시 전기차ㆍ배터리 가격 상승 불가피
美 생산공장 둔 국내 업계도 파장 예상
북미 흑연 생산업체들이 중국산 흑연에 최대 920%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이 같은 ‘폭탄 관세’가 실현되면 미국에서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국내 완성차ㆍ배터리 업계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흑연 생산업체를 대표하는 활성양극재 생산업체가 미 상무부와 국제무역위원회 등 규제당국 2곳에 중국 흑연업체들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개시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중국 업체들이 자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업고 인위적으로 낮은 가격에 흑연을 판매하고 있다며, 920%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중국산 흑연에 부과된 관세율은 25%다.
흑연은 주로 리튬이온 배터리 음극재에 사용되는 핵심 원료다. 현재 배터리용 흑연 공급망은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흑연 매장량만 보면 튀르키예와 브라질에 이어 3위지만, 생산량 기준으로는 전 세계 공급의 77%를 차지해 압도적 1위다.
지난해 미국이 수입한 9만1000톤(t) 이상의 흑연 중 7만 톤이 중국산일 정도로 중국산 흑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우리나라 역시 수입 흑연의 약 95%가 중국산이다. LG에너지솔루션ㆍ삼성SDIㆍ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도 대부분 중국 업체들로부터 음극재를 조달한다.
미국 흑연업체들의 요구대로 최대 920%의 고율 관세가 현실화하면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 비용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당장 중국산을 대체할 만큼의 물량을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차 지원책 축소와 관세 전쟁을 예고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취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업계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이 정도로 관세가 부과된다면 미국 내 전기차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우리나라 기업들도 치명타를 입는다”며 “아직 트럼프 정부 취임 전이기 때문에 상황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중국산 흑연을 배제하면 배터리를 거의 못 만들고 글로벌 시장에 공급이 되지 않는 구조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2019년부터 관세 부과 면제를 요청해온 테슬라와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중국 외 업체에서 사양과 용량 요건을 충족하는 흑연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도 중국산 핵심광물을 사용하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도록 하는 해외우려기업(FEOC) 규정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해당 규정 적용을 2년 유예했다.
미ㆍ중 갈등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은 흑연을 비롯해 갈륨ㆍ게르마늄 등의 미국 수출을 제한하고 있는데,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을 둘러싼 양국 갈등이 심화하면 애꿎은 업계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무역 갈등 속에서 업계 피해가 최소화하도록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공급망 다변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