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을 전후로 글로벌 증시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펀드에 뭉칫돈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 증시 변동성이 단기 조정에 그칠 것으로 판단한 저가 매수세가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22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설정액 10억 원 이상 594개 세계 권역별 해외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연초 이후 전날까지 1조4116억 원 증가했다. 국내외 주식·채권·대체, 머니마켓펀드(MMF) 등 분야를 아울러 단기자금으로 분류되는 MMF(31조6527억 원) 다음으로 큰 규모다.
해외주식형 펀드 설정액 증가 폭의 90% 이상은 북미주식형(1조2983억 원)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미주식형 펀드는 지난해 34%의 수익률 냈다가 새해 들어 0.52% 하락했다. 전체 해외주식형 펀드(-0.38%)에 비해 저조한 성과다. 2년(93.78%), 3년(57.50%), 5년(125.23%) 등 장기 성적이 양호했던 만큼 모처럼의 반락을 기회로 삼은 투자자들이 투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연말과 연초에 걸쳐 미국 증시는 상승세가 꺾였다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달 종가 기준 6099.97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S&P500지수는 이달 19일 5800선까지 추락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이 다가오며 회복세에 접어들어 21일에는 6000선에 올라섰다.
석유·천연가스 등 전통 에너지 규제 완화, 전기차 혜택 축소 등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은 물론 1기 행정부에서부터 강조한 정책들이 유지될 것으로 관측되며 시장에 안도감이 스며들었다는 진단이 나온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 핵심 정책으로 꼽는 관세 부과가 점진적으로 단행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거론되며 시장이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는 평가다.
이재원·조민규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주식시장은 보편적 관세를 보류한 트럼프 대통령의 온건한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라며 “최대 5000억 달러 규모의 인공지능(AI) 투자 구상을 발표하며 AI 테마 상승에 모멘텀을 보유하는 등 금리와 달러의 동반 진정에 영향을 미쳤다”라고 설명했다.
같은 기간 국내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1021억 원 감소했다. 해외 채권형펀드도 북미채권(4693억 원) 펀드로의 자금 유입에 설정액이 4771억 원가량 증가했다. 다만 지난해에만 1조2530억 원까지 덩치를 불린 글로벌 하이일드채권 펀드 설정액은 연초 이후 389억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