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난'으로 전격 해임된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찬구 전 석유화학부문 회장이 '장고(長考)' 끝에 반격에 나섰다. 특히 박찬구 전 회장이 박삼구 명예회장에 대해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 사태가 끝내 법정다툼으로 비화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측은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해임 절차 적법 여부 관건
박찬구 전 회장이 3일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는 "지난달 28일 박삼구 회장은 불법적으로 이사회를 소집한 다음, 의안을 주요 경영현안이라고 통보했다가 막상 이사회 석상에서는 저(박찬구 전 회장)의 해임안을 기습적으로 상정한 후, 두표용지에 이사 각자의 이름을 적도록 함으로써 회장의 지위에 기한 압력을 행사해 저의 해임안을 가결시켰다"며 "이에 대해 적법한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사회가 열릴 당시 자신은 이사회 안건이 '대표이사 해임 건'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박찬구 전 회장의 주장대로라면 형인 박삼구 당시 회장이 불법적으로 이사회를 소집한 것으로, 그동안 그룹 측이 내놓은 설명과는 상치되는 주장이다.
또 투표용지에 이사가 각자의 이름을 적도록 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해임안이 가결됐다고 주장했다. 형인 박삼구 명예회장이 사실상 공개 투표를 통해 이사들이 자신들의 의지와는 다른 결정을 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찬구 전 회장은 회장직을 박탈당한 이사회 의결이 불법적으로 이뤄진 만큼 이를 무효화하는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 박찬구 회장의 주장은 그동안 박 명예회장이나 그룹 측의 설명과는 크게 다르다.
박삼구 명예회장은 최근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사회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말했고, 박찬법 신임 회장도 취임 기자회견에서 "법적 분쟁 가능성에 대해 '제로'"라고 일축한 바 있다.
아울러 박삼구 명예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난 것은 현재의 위기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박찬구 전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퇴진한다고 하면서도 법적 실체가 없는 상징적 직위에 불과한 그룹회장직에서만 물러난다고 했을 뿐"이라며 "금호석유화학 등 5개 계열사의 대표이사직은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하는 것은 현재의 위기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삼구 회장은 상징적 의미에 불과한 그룹회장직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경영실패에 따른 책임을 지고 마땅히 각 계열사의 대표이사직을 비롯한 경영 일선에서 실질적으로 완전히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세창 상무 '주식 부당거래' 의혹
박찬구 전 회장은 이와 함께 자신의 조카이자, 박삼구 명예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상무의 주식 매입 과정을 폭로하며 주식 부당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박삼구 명예회장 일가에 대한 부당거래 의혹 제기는 자칫 사법 당국의 조사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인 만큼 경우에 따라서는 금호가(家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박찬구 전 회장에 따르면 박세창 상무 등이 최근 금호석화 주식 매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호렌터카와 금호개발상사에 금호산업 주식을 340억원에 매각했는데, 이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금호렌터카는 이미 대한통운 인수의 후유증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있기 때문에 대주주로부터 170억원이 넘는 계열사 주식을 매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또 금호개발상사가 30억원을 차입하면서까지 150여억원의 주식을 매입하는 것 역시 '의문투성이'라며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달 8일 공시에 따르면 박철완 부장과 박세창 상무는 금호렌터카와 금호개발상사에 각각 금호산업 주식 110만6270주와 122만6270주를 모두 340여 억원에 넘긴 것으로 돼있다.
구체적으로는 지난달 2일 박철완 부장과 박세창 상무는 주식시장이 마감된 오후 3시 이후 금호산업 지분을 각각 41만여주씩 82만여주를 내놓았으며, 이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사인 금호렌터카가 매입했다.
7월3일에도 박철완 부장과 박세창 상무가 각각 37만주씩 74만여주를 장 마감 시간에 맞춰 쏟아냈으며, 금호개발상사가 동시 호가에 사들였다. 7월6일에도 박철완 부장과 박세창 상무는 시간 외 거래로 89만4000여주를 매각했으며, 이 주식을 금호개발상사가 매입했다.
따라서 박찬구 전 회장은 이런 일련의 과정이 누군가 지시에 의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다며 사실상 그 배후를 박삼구 명예회장으로 지목한 것이다.
박 전 회장이 "불법적, 배임적 거래나 시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고발 조치를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그가 박세창 상무와 박삼구 명예회장을 고발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은 "박 상무의 주식 매입은 이미 공시를 통해 다 밝혔다"고 해명했지만 박 전 회장이 불법 의혹을 강하게 제기한 만큼 상당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박찬구 전 회장 '계열분리' 나서나
이와 함께 최근 박찬구 전 회장이 보유중인 금호석유호학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분 매입을 통한 반격에 나서는 한편 계열분리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지난달 24일 브릿지증권에 보유하고 있던 금호석유화학 주식 중 18만2370주를 담보로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지난달 21일엔 부국증권으로부터 금호석유화학 주식 15만2210주를 담보로 차입계약을 마쳤다.
이에 따라 박찬구 전 회장의 보유 주식(239만9292) 중 담보로 잡힌 주식은 187만480주(77.96%)로 확대됐다.
증권시장 관계자는 "박찬구 전 회장이 주식 추가 담보 대출을 바탕으로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추가 매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그러나 지분경쟁이 가열되면 금호석유화학의 주가가 급등할 가능성이 높아 실제 우호지분 확보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업계 일각에서는 박찬구 전 회장이 석유화학부문에 애착을 갖고 계열분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박찬구 전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을 제외한 그룹의 화학부문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 금호미쓰이화학, 금호폴리켐의 이사로 등재돼 있는데다 이들 회사 모두 우수한 매출과 영업실적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정다툼과 함께 계열분리를 위해 박삼구 명예회장과 담판을 지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는 것.
업계 한 관계자는 "금호석유화학에 대한 추가 지분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실익을 택할 수도 있다"면서 "계열분리를 가능성도 뱆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