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지식경제부장관 초청 디스플레이 업계 CEO간담회’ 행사를 마치고 나온 최경환 장관이 디스플레이 업계의 설비투자 계획을 듣고 보인 반응이다.
이날 디스플레이 업계는 간담회를 전후해 내년에 최소 8조2000억원, 향후 4년간 28조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 장관의 답변은 “디스플레이 업계의 투자 규모가 보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것이었다.
최 장관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내년 한 해동안 8조2000억이면 적지 않은 금액인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LCD설비투자에만 82억달러, 원달러 환율 1200원 기준으로 9조8400억원를 쏟아 넣었다고 하지만, 금융위기를 관통하고 있는 올해에는 절반 수준인 41억달러(4조9200억원)에 불과할 전망이고 보면 내년 투자 금액이 적지 않다.
규모도 규모지만 유심히 봐야 하는 것은 투자의 내용이다.
지경부는 내년 8조2000억원의 투자 규모가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주성엔지니어링 등 패널 및 장비업체 10개사를 대상으로 취합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경부 디스플레이 산업 담당자는 “최소 투자금액이고, 국내 설비투자에 한정됐고, 상위 3개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디스플레이 업계의 내년 투자계획 8조2000억원이 사칙연산으로 답을 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상위 3개사의 투자 금액을 더한 수치가 4조7000억원을 전후한 수준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국내 LCD라인에 2조1000억원 정도를 투자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3분기 기업설명회에서 3조원의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내년 중국 투자 규모가 9000억원 수준이다.
LG디스플레이는 3조5000억원을 내년에 투자할 계획이다. 내년 중국 투자 금액은 확정된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2년간 40억 달러 투자를 중국과 7대3정도의 비율로 진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투자는 2조원 미만으로 관측된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내년 투자계획을 밝히지 않은 상태이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OLED라인 설비에 6000억원 정도의 투자 금액을 가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디스플레이 업계 투자 계획에서 산술적으로 3조5000억원은 장비업체들에게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연 매출이 수천억원 규모인 이들 업체의 투자 여력은 한정돼 있다.
삼성전자 LCD총괄 출신의 한 증권사 연구원도 “(지경부의 발표가) 뭘 더한 것이지 모르겠다”면서 “백라인을 모두 합해도 이 규모가 나오기 어려워 추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계 일각에선 LED 투자도 포함된 것 아니냐는 추측마저 나온다. 디스플레이뱅크 한 연구원은 “조 단위의 투자가 이뤄날 수 있는 곳은 LED분야”라고 말했다.
삼성LED와 LG이노텍은 LED사업에 사활을 걸고 현재 한 대당 30억원 상당의 MOCVD장비 구입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확정된 것은 없지만 업계에서는 두 회사의 내년 투자 규모가 각각 1조원 가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LED의 경우 부품의 하나로서 디스플레이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이번 투자계획을 집계한 디스플레이산업협회 회원사도 아니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만큼 이번 디스플레이 투자계획에 대한 업계의 ‘혼돈’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래 정부가 기업들의 투자확대를 꾀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의 막대한 재정투자로 한국경기가 이른 회복세로 접어들었다지만 기업의 투자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서서히 출구전략을 검토해야 하는 현 시점에서 정부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TV수요 확대 등으로 올 상반기 예상을 뛰어넘는 호황을 보였다. 정부의 투자 촉구는 일견 자연스럽다. 디스플레이 업계의 투자계획 발표가 지경부장관 초청 간담회를 통해 이뤄졌다는 것에서 ‘최 장관에 대한 취임 선물’이라는 말도 나온다.
아쉬운 점은 투자계획을 발표할 때 이것이 산업의 발전방향을 가늠할 수 있도록 보다 구체화된 내용을 제시하지 못해 업계의 혼란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업계 일부에서라도 신임 장관이 정부의 투자촉진 정책에 발맞춰 숫자 발표에만 신경을 썼다는 평가까지 나왔다면, 앞으로 지경부의 정책에 업계 구성원들이 화답하는 방식도 외부의 눈치 보기에 머무를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