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송년 모임에서 만난 한 은행권 고위 관계자의 토로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는 은행들의 경영 환경은 미국발 금융위기로 본격화되면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힘겨웠던 한 해 였다. 다.
이 중 가장 힘겨운 나날을 보낸 곳은 단연 KB금융지주였다.
황영기 전 KB지주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파생상품 투자손실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전격 사퇴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금융회사인 KB금융지주로서는 하루아침에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난 것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은행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신뢰성과 최대 계열사인 KB국민은행 이미지에도 심각한 상처를 남겼고 황 전 회장이 사퇴하자마자 강정원 국민은행장 체제 구축의 인사이동을 강행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KB지주 새 회장 선출과 관련해서는 불공정 시비도 붙었다.
강 행장과 이철휘 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대표 등 3파전으로 진행되던 KB지주 회장 선출과정에서 두 후보가 '불공정한 경쟁'을 이유로 후보를 사퇴하거나 회추위 최종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특히 이 캠코 사장은 “강 행장과의 싸움은 마치 고스톱 판에서 상대편(다른 경쟁 후보자)은 ‘광’을 3개나 들고 있고 나는 쭉정이만 쥐고 있는 형국이었다”며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결국 강 행장 단독으로 회추위 인터뷰에 응하면서 어부지리로 사외이사들의 만장일치를 통해 새 회장 내정자로 확정됐지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이 외에도 증권사 인수ㆍ합병(M&A) 과정에서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비난이 쇄도했고 차기 국민은행장 선임이 아직 해결되지 않아 힘겨운 나날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금융지주도 올해 힘겨운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황영기 전 회장이 사퇴한 근본적인 이유가 우리금융지주 파생상품 투자손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까지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으면서 결국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자리에까지 물러났다.
이례적으로 전 우리은행 수장 2명이 한 번에 물러난 셈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당시 두 수장들이 모두 물러나면서 우리은행이 당장 무너질 것 같은 여론이 형성돼 상당히 곤혹스러웠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나지주 역시 지난 1년간 악성 루머로 힘겨운 2009년을 보내야 했다.
리먼사태 이후 하나지주는 태산LCD 파생상품 투자손실, 유동성 위기론은 물론 외화유동성으로 파산할지도 모른다는 설들이 난무 했었다.
김승유 회장은 “지난 1년간 머리가 많이 빠졌다. 38년간 이 조직에 있으면서 이렇게 힘든 경우는 처음”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또 “위기를 겪느라 유동성과 BIS 비율 등을 무리하게 유지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올 3분기 당기순이익과 누적 당기순이익은 올들어 최대치인 2400억원과 1133억원을 각각 기록하면서 더이상의 악재는 확산되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또 순이자마진(NIM)은 지난 4월 이 후 6개월 연속 상승해 10월에 2.00%를 기록했고 그룹 이자이익은 지난 3분기에 전분기 대비 22.2%나 늘어난 5311억원에 달했다.
하나지주는 태산LCD 사태 역시 손실을 감추기보다는 투명하게 공개한 것은 물론, 오히려 금융그룹의 사업계획 전면 재검토를 통해 리스크관리를 강화하는 등 내실다지기에 나서고 있다.
송년회에서 만난 한 은행 관계자는 “만약 올해보다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아마 내년에도 (금융권) 경영 환경은 그리 녹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좋아질 것이란 희망마저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살겠습니까" 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