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후생활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노후생활이 길어지는데 은퇴 후 안정된 생활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가 노후를 보장해 주는 국민연금으로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안정된 노후생활은 경제력이 필수다. 그러나 대개는 자녀의 교육과 결혼 등 여러가지 이유로 부동산이나 금융투자로 든든한 노후 자금을 확보하기는 어려워 노후생활의 상당부분을 퇴직금에 기댈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해 지난 2005년 12월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됐으며 올해로 5년째를 맞이하게 됐다.
특히 올해 말부터 퇴직보험과 퇴직신탁이 폐지됨에 따라 퇴직연금제도 도입 6년째를 맞이하는 내년부터는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퇴직연금제도에 대한 인식 부족과 규제에 대한 한계가 남아 있다며 좀더 빠른 제도 정착을 위해 다양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시장 선점을 위해 벌이는 과당 경쟁과 계열사 밀어주기 등도 우려 사항으로 지목되고 있다.
◇ 기업 도입 아직 저조 = 그러나 아직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기업들은 저조한 상태다
금감원이 2010년 상반기 퇴직연금시장을 조사한 결과, 퇴직연금 도입 사업장수는 7만8517개소, 가입 근로자수는 180만764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5인 이상 사업장(51만1794개소)의 15.3% 및 상용근로자(737만7241명)의 24.5%에 해당하는 수치. 특히 3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퇴직연금제도 도입률이 32%에 그쳤다.
여기에 올해말 퇴직보험·신탁의 폐지를 앞두고도 퇴직보험·신탁 도입 기업 중 퇴직연금으로 전환한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2.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인식 부족과 규제 해결 필요 = 퇴직연금제도는 인식 부족과 제도적 문제 등에선 여전히 정착단계에 머무르고 있어 안정적인 체계를 갖췄다고 보기는 힘들다.
우선 퇴직연금이 수익률 측면에서 퇴직·신탁과 별 차이가 없어 근로자들이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또 중간 정산 등의 문제도 근로자들이 선뜻 마음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도입은 절반 이상 사용자 주도로 이뤄졌지만 근로자가 나서서 제도 도입을 주도한 경우는 5%에 불과했다.
또한 기업들은 매달 일정 금액을 사외에 적립해야 하는 등 제도 전환에 대한 인센티브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기업들은 기존 퇴직보험을 운영하면서 납입 보험료 전액의 손비 인정으로 절세효과와 부채비율 감소에 따른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누려왔다. 그러나 퇴직연금에는 이런 혜택이 없다. 기업들이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려면 40%만 적립하던 퇴직급여 충당금을 60%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여기에 경우에 따라 복잡한 노사 교섭을 거쳐야 하는 부담 등도 낮은 도입률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경제활동인구 1인당 연금자산 규모는 미국의 12분의 1, 일본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노후를 대비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자금도 부동산 등에 집중돼 있는 실정이다.
◇ 공정 경쟁 질서 확립해야 = 현재 53개 금융회사들은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을 올리기 위해 과도한 수익률을 보장하는 등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하고 있다.
특히 퇴직연금 적립금의 90% 가까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집중돼 있어 고금리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해 최근 금융당국은 고금리 경쟁에 제재를 걸기도 했다.
또 은행권과 보험권은 꺾기와 계열사 밀어주기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은행권의 경우 중소기업들에게 대출을 미끼로 퇴직연금 가입을 연계하는 일명 ‘꺾기’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보험권은 일부 대기업 계열 보험사들이 계열회사들의 퇴직연금 물량을 한꺼번에 몰아주고 있다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퇴직연금이 본격 궤도에 오르기 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계속될 것”이라며 “공정 경쟁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개선 방안 = 최근 보험연구원은 우리나라 퇴직연금제도가 보다 확실히 자리매김하기 위해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보험연구원은‘퇴직연금 규제체계 및 정책 방향’이란 보고서를 통해“우리나라의 퇴직연금 규제는 주식이나 펀드 등에 대한 투자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투자 규제 방식”이라며“그러나 선진국에서는 투자 방식은 자율적으로 맡기는 대신 근로자의 연금 수급권 보호에 초점을 맞추는 규제를 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퇴직연금의 투자에 제한을 두지 않는 대신 정부의 지원하에 연금지급보장공사를 운용하고 있다.
또한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에 대한 규제도 문제로 지적됐다. 주식·주식형펀드 등의 직접투자가 불가능한 확정기여형이나 개인퇴직계좌형은 원리금 보장상품 위주로 운용되고 있어 투자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 전문가들은 퇴직연금제도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확정기여형 근로자의추가 부담분 소득공제 한도를 확대하거나 연금수령이 퇴직금 일시 수령보다 유리하도록 세제를 정비하는 근본적인 보완대책 마련이 선행되야 한다고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