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패밀리] 美 자동차 역사의 아이콘…‘포드 신화’

입력 2010-12-0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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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왕 ’헨리 포드...미국 생산체계 혁명 일으켜

(편집자주: 역사적으로 글로벌 사회·문화·경제를 좌우하는 명문 가문은 존재해왔다. 유럽의 로스차일드 가문이 글로벌 자본시장을 주무르듯 이른바 로열패밀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파워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를 이해하고 역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로열패밀리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13회에 걸쳐 글로벌 로열패밀리의 역사와 자본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을 분석한다)

미국 자동차 명가 포드 가문은 107년 역사를 통해 세계 자동차 역사의 출발이자 대중화의 아이콘으로 표현된다.

자동차의 아버지 헨리 포드는 석유왕 록펠러, 철강왕 카네기 그리고 철도왕 밴더빌트와 함께 미국 근대 산업의 발전을 이룬 대표적인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헨리 포드는 1903년 포드자동차를 설립한 후 미 자동차 산업의 대중화시대를 열었다.

포드가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당시 일반적인 사업가들이 가졌던 경영마인드와 다른 포드만의 남다른 철학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업가들은 경제성장을 등에 업고 기업 이익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고소득자과 상류층을 겨냥했다. 포드자동차의 주요 주주였던 알렉산더 말콤슨 역시 상류층을 타깃으로 한 자동차 생산을 고집했다.

▲헨리 포드와 자동차 대중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포드 자동차의 ‘T형 포드’.

포드는 달랐다. 그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차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꺽지 않았다. 이 때문에 포드 설립 초창기 포드 내부는 시장 포지셔닝을 두고 끝없는 갈등을 벌였다.

반대파와의 첨예한 대립 끝에 포드는 1906년 말콤슨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보통 사람들을 위한 생산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최초의 대중차 T형 포드의 탄생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1908년 생산이 시작된 양산대중차 T형 포드는 포드 가문의 상징이자 헨리 포드 경영철학의 실체다.

자동차의 대중화와 보편화에 기여한 이 차는 1927년 단종 때까지 20여년간 1545만8781대가 생산됐다. 헨리 포드는 이 차로 ‘자동차 왕’이라는 기념비적인 명예를 거머쥐었고 가문에 엄청난 부를 안겼다.

1908년 T형 포드가 850달러에 출시됐을 당시 광고 문구는 “2000달러 미만의 자동차가 2000달러 이상의 자동차와 다른 점은 장식이 없다는 것뿐이다”였다. 포드에게 있어 자동차는 미국인의 두 발일 뿐 장식도 사치도 아니었다.

1932~1941년 포드자동차는 전세계적으로 약 1000만대의 차를 팔아치웠다.

▲앨런 멀랠리 포드자동차 CEO는 효과적인 경영을 통해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블룸버그.
포드는 시스템의 혁명을 통해 경영철학을 확립했다. 이를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포디즘과 포드시스템이라는 신개념이었다.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포디즘과 부품의 표준화, 제품의 단순화, 작업의 전문화라는 ‘3S’의 포드시스템은 자동차 대량생산체계를 견인한 진보와 개혁을 넘어선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창업주 헨리 포드에 이어 아들 에드셀이 1919년부터 1943년까지 사장을 맡았고, 에드셀의 아들 헨리 포드 2세가 대물림을 했다. 1979년 헨리 포드 2세가 사임하면서 포드 가문은 경영일선을 떠났다. 가문은 일선의 최전방에서 물러갔지만 포드 가문은 대주주를 유지해왔다.

세대를 이어오던 저력의 포드 가문은 1980년대에 위기를 맞았다. 일본 자동차가 미국시장에 진입하면서 포드를 포함한 제너럴모터스와 크라이슬러 등 이른바 ‘빅3’는 직격탄을 맞았다.

최대 위기는 2001년에 고개를 들었다. 당시 포드 자동차의 타이어 결함으로 사망자가 170여명에 달했다.

포드는 엔진 결함과 타이어 리콜문제를 장기 은폐했다는 여론의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2001년과 2002년 각각 54억5000만 달러, 9억8000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

포드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2000년 22.8%에서 점점 추락하다 2005년 17.4%를 기록했다. 이듬해 포드 자동차는 4분기 배당금 지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수많은 기업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2008년 금융위기에 포드 가문의 지분은 10년전 22억달러에서 1억4000만달러로 추락하기도 했다.

포드는 그러나 ‘빅3’ 중 유일하게 구제금융을 받지 않는 등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이같은 위기 극복 능력의 배경에는 1987년 시작된 포드 가문 회의가 있었다. 포드 가문 회의는 사업이 기로에 설 때마다 방향을 제시하는 중추적 역할을 했다.

헨리 포드 2세의 독자인 에드셀 포드 2세는 "가문 회의는 군대의 출동명령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앨런 멀럴리 포드 최고경영자(CEO) 역시 포드의 부활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멀럴리 CEO가 취임한 2008년말 이후 포드의 주가는 500% 이상 급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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