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달라졌다. 6·2 지방선거 직후 ‘소통’을 통해 시정을 운영하겠다던 그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재임 초반만 해도 오 시장은 시의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려 한다. 그의 이같은 고집으로 최근 ‘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오 시장의 이같은 행보에서 비춰지듯 요즘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와의 갈등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무상급식 예산책정 문제로 시와 시의회 간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 이후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양측간 싸움은 커져가고 있다. 마주보고 달리는 폭주기관차의 모습이다.
정치권에서는 오 시장의 한치의 양보없는 전투적 행보를 대권을 향한 노림수로 분석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를 제외하고 이렇다 할 대권 후보가 없는 한나라당에서 ‘친이’계의 선택을 받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오 시장의 최근 행보가 대권을 향한 전략적 행보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일단은 성공했다. 실제 시의회와 대립 각을 세우는 동안 오 시장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상승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 경쟁자인 김문수 경기지사에 우위를 보이고 있으며, 30%대의 독주를 이어가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뒤를 추격하고 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일 신년 특별연설에서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무차별적 복지’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 오 시장에게 힘을 실어준 것도 지지율 상승에 일조하고 있다.
서울시의회 민주당 관계자는 “오 시장이 그동안 약했던 당내 기반을 다지기 위해 강경책을 펼치고 있으며 그 결과도 만족스러울 것”이라며 “이로 인해 끝까지 시의회를 무시하고 고집 피우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항마’로서 비교대상에 오르내리던 오세훈 시장과 김문수 경기지사는 최근 들어 색깔이 뚜렷이 갈리는 분위기다. 오 시장이 민주당의 전면 무상급식을 반대하면서 ‘복지 포퓰리즘’과의 전쟁을 선포한 반면, 김 지사는 대표 복지서비스로 자리잡은 무한돌봄 사업을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무상급식 대 역점사업’이라는 거의 같은 상황에서 김 지사는 의회와의 타협에 성공해 갈등을 일단락시키고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김문수 지사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한다는 소리도 그래서 나온다. 김 지사 역시 도의 역점사업과 무상급식 예산 마련을 두고 진통이 적지 않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의회와 단절이 아닌 타협을 택했고 결국 성공했다. 경기도는 그동안 거부한 무상급식 예산을 ‘친환경 학교급식 지원비’로 지원키로 하고 도의회는 전액 삭감하려 했던 김 지사의 역점사업에 필요한 예산안을 통과시켜 주는 방식으로 서로 양보한 것이다.
경기도의 예산안 타결 이후 서울시의회 민주당측은 “오 시장은 김문수 지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의회를 존중하고 대화와 소통으로 정책을 펼치는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경기도가 무상급식안에 패배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경기도를 비판하면서 시의회와 타협할 의사가 없다며 고집을 피우고 있다.
오세훈 시장은 지금 시의회와 길고 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것이 대권에 도전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인지, 아니면 오 시장의 소신에 따른 행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수개월째 파행을 겪으면서 시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지루한 싸움을 계속 끌 경우 언제 여론의 역풍을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 최근 2000여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국민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오세훈 시장이 거액의 세금으로 무상급식 반대 광고를 낸 데 반발, 오 시장에 대해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밝히는 등 ‘반오세훈’ 정서가 커지고 있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오 시장이 계속 고집을 부리면서 친이계 표를 얻는다 한들 한계가 있고 박근혜라는 거대한 산을 넘기엔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며 “시정에 몰두해 시장으로서의 그의 능력을 펼쳐보여 시민으로부터 인정받는 게 우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는 타협의 산물’이라는 말이 있듯, 대권을 위해서 건 서울시를 위해서 건 지금 필요한 건 투쟁이 아닌 타협이라는 것을 오 시장이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한 관계자는 “오 시장이 대권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눈앞에서 시의회의 불법적 행태가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라면서도 “시장과 시의회가 한발씩 양보해 시정운영이 더이상 파행을 겪지 않도록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