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포퓰리즘과 관치는 2008년 정권이 들어섬과 동시에 시작됐다. 대선공약이었던 ‘대한민국 747 비전’ 자체가 대중정서에 영합한 구호의 전형이었고, 서민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50여개 생필품의 물가를 집중단속하겠다며 만든 52개 ‘MB물가’가 관치의 전형이라는 지적이다.
747 비전은 △연 경제성장률 7% △10년 내 1인당 국민총생산(GDP) 4만 달러 달성 △7대 경제대국으로 부상시키겠다는 내용이다. 이 대통령은 집권 초기 현실성 떨어지는 747과 MB물가에 이어 종부세 및 양도세 완화 등 인기영합 정책을 꾸준히 펼쳐 나갔다.
그러나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대형 복병’을 만나면서 747 공약은 물론 플러스 경제성장 자체가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 이 금융위기가 바로 현 정권의 1970년대 개발독재식 ‘관치’를 부활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정부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집권 초기 관료에 대한 불신이 컸던 이 대통령은 금융위기가 터진 후 경제가 휘청거리자 비상경제 대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을 관료들의 과거 ‘경험’에 의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결국 현실적으로 자신의 정책 의도에 충실할 수 있는 이른바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를 화려하게 부활시켰지만, 경제관료 앞에 경제운영을 내맡기는 신세가 됐다. 이후 모피아를 통한 관치는 본격화했다.
특히 정부의 관치 한 가운데는 ‘대기업’이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경제정책 기조가 ‘대기업의 투자 확대에 따른 성장의 과실이 중소기업과 서민으로까지 확산된다’는 이른바 ‘적수효과’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정권이 초기에 내세웠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 ‘친서민’으로 바뀌면서 대기업은 일순간에 ‘희생양’으로 전락했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정부는 ‘친서민-상생협력-공정사회-물가관리’ 등의 과정에서 대기업의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이 대통령이 한 마디 하면 여당을 시작으로 검찰, 국세청, 공정위 등 공안기관들은 기다렸다는 듯 세무조사 등의 방법으로 대기업의 숨통을 조였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7월22일 서울 강서구의 포스코 미소금융 지점을 방문해 대기업 계열 캐피털사의 금리에 대해 “사채이자가 아니냐”며 강도 높게 비판하자, 캐피털사는 울며겨자 먹기 식으로 금리를 내려야 했다. 5일 후인 7월27일에는 이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과 투자, 중소기업의 상생문제에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다시 대기업을 압박했고, 삼성그룹은 당초 계획보다 3000명 늘어난 2만2000명을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을 뽑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같은 해 8월15일에는 12명의 재계 총수를 만나 공정한 사회를 위한 대기업의 역할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총수들에게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안 되는 건 사실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정책 등은 공정한 사회 위한 구체적 실천”이라고 얘기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을 돌아다니며 공정협약을 맺기 시작했다.
‘관치’는 최근 ‘물가관리’란 무대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지난 1월3일 이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 이후 공정위를 필두로, 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 등이 나서 정유사·통신사·식품·유통업체의 팔을 비틀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56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동방성장지수를 평가키로 하면서 경영 위축을 우려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정부가 마치 슈퍼맨이 되라는 것 같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반(대)기업정서를 오히려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현재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개발 논리와 그에 대한 심정적인 향수, 정책의 회귀, 통제경제로 나가고 있다”며 “심하게 말하면 ‘개발독재’이고 ‘동원체제’로의 회귀”라고 말했다.
그는 “시장경제는 가격 수용자들이 가격을 설정하지 않고 가격에 순응해서 일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나선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비시장적이고, 시장과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춘석 민주당 대변인도 “이명박 정부가 물가에 관해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결국 민심을 두려워서 한 일시적 조치”라며 “아우성치는 민생을 면피하고, 결국 재보선이나 총선 등에서 민심이 돌아서는 것을 두려워 한 행위”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