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고래잡이가 금지되면서 장생포는 예전의 영화를 찾아보기 힘든 항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울산 귀신고래 회유해면(천연기념물 제 126호)으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장생포 앞바다와 장생포고래박물관 그리고 박물관 앞에 복원 전시된 국내 마지막 포경선인 제6진양호가 그것이다.
고래잡이의 금지와 함께 장생포의 기능도 변했다. 잡아온 고래로 시끌벅적했던 포구는 이제 장생포를 빼곡히 둘러싼 산업단지의 항구가 된 것. 그렇다면 지금 울산을 대표하는 어항은 어디일까. 울산 북쪽에 자리한 정자항이다. 국가어항인 정자항은 가자미를 주로 잡는 항구이다. 한때 멸치잡이 배들이 이곳에 들어와 조업을 했으나 지금은 가자미 배들도 모두 닻을 내리기 어려울 만큼 좁아 들어오지 못한다.
참가자미 조업이 활성화된 7년 전부터 최근까지 그 목표량을 채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가까운 바다에 나가 그물을 걷으면 어렵지 않게 목표량을 잡아왔다.
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가자미를 잡기 위해 점점 더 먼 바다로 나가야하고, 잡히는 가자미의 수도 줄어들고 있음을 어부들은 체감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가자미 금어기 설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비린내 없이 고소한 참가자미는 다양한 방법으로 식탁에 오른다. 비늘을 벗겨 햇빛에 한나절만 말리면 꾸덕꾸덕해져 조림이나 튀김으로 만들어 먹기 좋은 참가자미가 되고, 신선한 참가자미를 그대로 미역과 함께 끓여내면 시원하고 고소한 참가자미 미역국이 된다.
그러나 정자항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것은 참가자미회이다. 참가자미를 회로 먹는다는 것이 낯설지만 울산 인근지역에서는 최고의 횟감으로 참가자미를 손꼽는다. 참가자미는 자연산 어종이고, 깊은 바다에서 자라 양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을 막 지나온 3월, 참가자미의 맛은 으뜸이다. ‘봄 도다리’라는 별칭을 가질 만큼 봄철에 맛있다는 도다리도 가자미과이니 그 맛을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정자항 사람들이 울산의 맛으로 손꼽는 또 하나는 대게이다. ‘정자대게’는 껍질이 얇고 크기도 그리 크지 않지만 대게의 향이 살아있어 대게찜, 대게탕 등으로 봄철 입맛을 돋우기에 그만이다.
울산의 마지막 맛은 미역이다. 정자항 앞바다는 암초가 많고 물살이 빠르다. 그 바다 속 바위에는 아예 미역바위라 이름 붙은 것도 있다. 바로 정자항 남쪽 판지마을 앞바다에 있는 곽암(藿巖, 울산광역시기념물 제38호)이다. ‘박윤웅 돌’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 바위에는 고려 개국 당시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 태조가 나라를 세울 때 공을 세운 박윤웅에게 이 지역을 주었고, 바닷가사람들이 곽암에 붙은 미역을 채취해 매년 박윤웅의 후손에게 제공해왔다는 이야기이다. 미역 채취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바위에는 어사 박문수가 새겼다는 ‘윤웅(允雄)’이라는 글자가 남아있다.
물살이 빨라 미역이 많이 흔들리며 자라기 때문에 부드럽고 맛있다고.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은 미역귀를 자르고 틀에 맞춰 모양을 만든 후, 5일간 햇볕과 바닷바람에 말리면 상품이 된다. 강동 화암 주상절리는 제주도의 그것처럼 대규모로 형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몽돌해안과 어우러져 색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맑은 바다를 향해 꽃처럼 피어난 바위 ‘화암(花巖)’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이다.
이밖에도 울산에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다. 울산의 전망대라 부를 수 있는 봉대산 정상의 주전봉수대(울산광역시기념물 제3호), 울산 앞바다를 오가는 배들의 오랜 길잡이인 울기등대와 대왕암 등이다. 봄철, 나른한 햇살을 즐기며 해안을 따라 천천히 울산의 아름다움과 맛을 즐기기 좋은 여행코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