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싼 전방위 압박에 ‘사퇴’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운찬 위원장은 “주무부처 장관이 그렇게 거칠게 비판하는 것은 나보고 일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며 사퇴 검토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퇴발언은 정 위원장이 주장한 이익공유제에 대한 거센 비판으로 사면초가에 몰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지만,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위원회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이익공유제를 정 위원장이 끝까지 고집한 이유도,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포장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운찬 “일하지 말라고 하는 것” = 정 위원장의 ‘사퇴 검토’ 발언은 그의 이익공유제에 대한 거센 비판이 일차적인 배경이다.
지난달 23일 동반성장지수안 확정 발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정 위원장이 돌출적으로 주창한 초과이익공유제는 정치권과 재계로부터 강도 높은 공격을 받았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시장경제원리에 맞지 않는 급진좌파적 발상이다. 어느 대기업이 적절한 이윤 설정을 하겠냐”며 “초과이익공유제라는 화두를 내세워 중소기업을 위하는 냥 하는 것은 현행 법 체계에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이해가 가지 않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이익공유제라는 말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익공유제에 대해 수 차례 반대 의견을 밝혀온 최 장관은 지난 16일 “현실에 맞지도 않는 개념은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사퇴의사에 지경부 ‘깜짝’…“예산·인력 늘린다” = 정 위원장의 사퇴 발언에 깜짝 놀란 지경부는 정운찬 달래기에 나섰다.
우선 올해 지경부와 중소기업청에서 각각 7억 원씩 모두 14억 원의 예산을 동반성장위원회에 주기로 결정했다.
동반성장위의 올해 예산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가 지원한 20억 원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받을 2억 원에 정부 예산을 합쳐 모두 36억 원으로 늘어났다.
또한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맡아온 대중소기업 협력재단 이사장 후임으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을 결정했다. 그리고 대중소기업 협력재단 인력도 현재 20명에서 4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사퇴땐 후반기 국정운영 큰 차질 = 정 위원장의 사퇴가 현실화될 경우, 동반성장위원회는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2월 13일 민간기구로 출범한 위원회가 그동안 힘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전직 총리인 정 위원장의 무게감과 역할이 컸다.
정 위원장이 그만둔다면 현실적으로 그만한 존재감을 지닌 후임자를 찾기 쉽지 않다. 위원회가 수장을 못 찾고 상당기간 표류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동반성장 정책에 적지 않은 차질이 빚어질 공산이 크다.
특히 동반성장위원회는 대기업이 극대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반성장지수와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되던 동반성장위원회의 현안들은 정 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 발언과 그에 대한 재계의 뜨거운 반발에 묻혀 추진 동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사퇴를 발표한 것도 아니고 사퇴를 검토한다고 발언하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며 “동반성장 분위기가 정 위원장 개인 때문에 흔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