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2기를 집권한 룰라 전 대통령의 성적표는 경이로웠다.
2002년 취임 당시 2.7%였던 경제 성장률은 7.5%로 상승, 브라질의 경제규모는 세계 8위권으로 껑충 뛰었다. 2800만명에 이르던 빈곤층이 새 삶을 얻었고 3600만명이 중산층으로 편입돼 튼튼한 내수기반을 다졌다.
미국과 일본 등 쟁쟁한 경쟁국을 물리치고 2016년 하계올림픽 유치라는 성과까지 거뒀다. 그 결실은 취임 당시보다 12%포인트나 높은 87%의 높은 지지율로 화답하며 그를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12세 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19세 때 사고로 새끼 손가락을 잃고 노동운동에 뛰어들 당시만해도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그가 이처럼 박수 갈채를 받게된 비결은 좌파와 우파를 넘나드는 ‘소통과 실용주의’에 있다는 분석이다.
가난이 대물림 된 농가에서 태어난 룰라 전 대통령은 노동계 출신의 전형적인 좌파 인사였지만 과감하게 구 여권 보수 인사와 재벌을 등용했고 야당 대부분과 정책 연대를 구축했다.
대외적으로는 메르코수르를 통해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파라과이 등 남미 4개국을 통합하고, 중동·아프리카 등 과거 브라질과 외교관계가 소홀했던 국가들과의 소통에도 전력을 기울였다.
사회정책으로는 ‘기아제로정책’을 비롯해 빈곤층에 대한 지원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 일환으로 극빈층 가족수당인 ‘보르사 패밀리어’를 신설하고 최저 임금도 인상했다.
룰라 본인은 노동계 좌파였지만 급진적인 좌파 노선은 자제하고 현실적인 경제정책에 초점을 맞췄다.
2002년 대선 당시 일각에서는 그가 좌파 노선을 펼 것이라는 관측이 강했으나 막상 룰라 정권이 출범하자 그는 공무원 연금 개혁 등을 통해 재정 지출을 삭감하는 등으로 재정 건전화를 도모해 그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 결과 국제통화기금(IMF)의 목표치를 훌쩍 뛰어넘는 재정 흑자를 달성해 2009년에는 IMF에 대한 순채권국으로 돌아섰고 인플레 억제에도 성공했다.
대통령에 다시 도전하라는 요청도 있었지만 그는 “신은 한 사람에게 선물을 두 번 주지 않는다”면서 아름다운 퇴장을 선택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2003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과거와 다른 브라질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세계에서 가장 비중있는 인물이라는 찬사 속에 8년간의 임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