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평창의 함성이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 12년이라는 오랜 염원 끝에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선정됐다. 앞서 2010년과 2014년 올림픽 유치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실패, 결국 3수 끝에 온 국민이 하나가 돼 결실을 맺었다.
평창은 지난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2014 소치동계올림픽 등 두 대회 모두 올림픽 개최지 결정 1차 투표에서 최다득표를 했으나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결선투표에 서 아쉽게 캐나다와 러시아에 올림픽 유치권을 넘겨줘야 했다.
평창은 2003년 7월 체코프라하에서 개최된 제115차 IOC 총회에서 처음으로 2010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했다. 당시 경쟁도시인 캐나다 밴쿠버와 결선투표까지 이어졌지만 결국 유럽세의 몰표에 밀려‘역전패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어 2007년 7월 과테말라에서 열린 제119차 IOC총회에서 1차 투표에서 36표를 얻어 소치(34표)와 잘츠부르크(25표)를 제치고 1위로 결선에 올랐지만, 이어진 2차 투표에서 51표를 얻은 소치에 4표 차이로 역전돼, 프라하의 악몽을 재연하며 두 번째 실패를 맛봤다.
하지만 평창은 멈추지 않고 세 번째 도전을 냈다. IOC는 지난해 6월 공식 후보도시로 평창과 독일 뮌헨, 프랑스 안시를 선정했다.
이에 지난 2월 현지 실사를 위해 평창을 찾은 IOC는 콤팩트한 경기장 배치와 짧은 이동거리, 도민과 전 국민들의 높은 유치 열기, 합리적 가격의 숙박시설 등에 좋은 점수를 줬다. 마침내 7월 6일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선정됐다.
이처럼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데는 온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와 함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IOC 위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유치 위원장),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등 재계 3인방의 맹활약이 눈부셨다.
특히 피겨여왕 김연아와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등 동계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선수들. 그리고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를 맺은 미국의 토비도슨 등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이건희 회장은 이번 올림픽 유치를 위해 그 어느때 보다 숨가쁘게 뛰어 왔다. 삼성전자가 10년 이상 IOC의 일등 스폰서로 자리매김하면서 이 회장의 입지가 독일 뮌헨의 토마스 바흐 IOC 수석부위원장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해 진 것이 큰 도움이 됐다는 평이다.
지난 5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렸던 IOC 테크니컬브리핑에서 이 회장은 “만날 사람은 다 만났다”며 “위원들이 속내를 얘기하지 않지만 힘들어지진 않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유치위원장’으로 나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뛰었다. 조 회장은 지난 2009년 9월 제121차 IOC 총회 참가를 시작으로 2011년 7월 제123차 IOC 총회가 열리는 남아공 더반까지 무려 34회나 국제 행사에 참가하는 등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혼신을 다했다.
심지어 조 위원장은 최근 기업 경영보다 평창 유치를 우선으로 삼았다는 얘기까지 나왔을 정도다. 실제로 그는 IOC 평가단이 평창 실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탑승구 앞까지 손수 마중을 나가 평가단을 적극적으로 가이드 했다.
심지어 인천공항에서 평창까지 가는 버스에 올라 직접 마이크를 잡고 평가단에게 안내 하는 등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한 기업 회장의 위엄을 잠시 내려놓았다.
대한체육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도 IOC 위원들과의 물밑접촉을 하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강력한 힘을 쏟았다.
박 회장은 오랫동안 IOC 위원 활동을 하면서 쌓은 인맥과 노하우를 동원해 지속적으로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적극 나섰다. 국제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그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IOC 위원으로 오랜 기간 지내왔기 때문에 100여 명의 IOC 위원 중 친분이 있는 인사들은 무려 80여 명에 이른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