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지출 중 의약품 비중이 22.5%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4.3%의 1.6배에 달하고,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제네릭 가격이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한마디로 리베이트 영향 등으로 의사들이 약을 너무 많이 쓰고 있고 약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얘기다.
정부의 약가 인하의 핵심은 특허가 끝난 오리지널약과 제네릭(복제약)의 약값을 일괄적으로 인하하고, 최종적으로는 오리지널약과 제네릭의 약가를 동일하게 받게 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제약업계는 공멸 위기에 처했다며 지난 7일 '추가 약가인하 추진 철회 요청 호소문'을 제약사에 발송한 데 이어 앞으로 제약사 대표의 직인을 받아 보건복지부와 관련 단체에 공문 형태로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약업체들이 이처럼 강력 반발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의 부작용으로 국내 제약산업의 기반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필수의약품의 안정적 공급마저 끊기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제약업계에 대한 정부의 초강수규제에 정책에 국내 제약사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당장 지난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등에서 전반적으로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상위 10대 제약사의 2분기 매출은 1.7% 성장하는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3분기에도 하반기 리베이트 약가인하 연동제 시행 등의 이슈로 실적 부진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반약 슈퍼판매로 인한 수혜도 불투명하다. 여전히 제약사들은 약사들과의 관계와 신규 유통망 진출에 대한 부담으로 약국외 판매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는 단호하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7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정책위원회에서 “의약품 리베이트 제공 등 서민부담을 초래하는 분야에 대해서 지속적인 감시와 제재를 가할 것”이라며 리베이트 단속 의지를 재확인했다.
국내 제약업계의 영업활동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압박은 영업맨의 발길을 외국계 제약사로 돌리게 하고 있다. 최근 한국제약협회가 191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신규채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 3년간 영업직은 1579명, 1411명, 1315명으로 줄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정부 정책의 근간은 약가인하에만 맞춰져 있고 제약산업의 육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 충분하다. 특히 단계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일시에 고강도로 추진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신약개발을 위한 R&D(연구·개발)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푸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해서는 다른 인하 요인도 많은데 유독 제약업체 쪽에 집중돼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제약업계가 너무 편향적이라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라는 게 결국은 정부의 지출을 줄이자는 것인데, 의사들이 너무 고가의 약을 처방하고 있지 않은지 등도 검검해 볼 필요가 있다. 조제료 인하나 진찰료 인하 등도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
정부도 물론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정부의 스탠스는 가장 문제가 많은 제약업계에 대해 먼저 문제점을 개선해나가고 의사나 약사 쪽에 대해서도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한꺼번에 제도를 바꿀 경우 혼란이 불보듯 뻔하고 이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당초 의지대로 균형감 있는 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제약업계를 제외한 다른 업계에서 그동안의 관습과 관행을 털쳐내고,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대폭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도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하지 말고 처음 결정한 대로 누구나 공감하는 공평타당하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번 사안은 단순히 볼 게 아니다. 각기 입장과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만큼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