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은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3%를 기록했다는 보고를 받고 화들짝 놀랐다. 한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화한 이후 여론으로부터 본연의 임무인 물가안정을 도외시하는 게 아니냐는 질타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한은은 당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 후반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 관계자는 “농산물과 금값이 크게 뛰어 예상치를 벗어났다”고 설명했다.
한은의 예상을 벗어난 물가 오름세로 연간 목표치인 4.0%는 이미 물건너 갔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김 총재는 한은법 통과로 ‘금융안정’ 기능을 손에 쥐었을 때도 “무엇보다 물가안정에 주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같은 다짐이 머쓱해졌다.
이 때문에 오는 8일 열리는 금통위에서 김 총재가 어떤 견해를 밝힐지 주목된다. 그는 지난달 26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금융시장이 불안하지 않는 한 정책금리를 정상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만 놓고 보자면 인상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높다. 최근 세계 증시가 지난달 초 만큼 급변동을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려도 문제다. 김 총재는 지난 7월 금리를 동결한 이유로 “가계부채가 중요한 변수였다”고 말했다. 현 상황은 그때보다 심각하다. 지난 8월에도 가계부채는 5조원 이상 늘어 900조원에 육박했다. 연체율은 0.77%로 1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연체율은 가계대출 규모보다는 기준금리 인상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김 총재로서는 인상을 주장해도, 동결로 가려해도 비판은 피할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결국 이 같은 형국은 한은이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한 금리정상화가 선제적이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박형중 메리츠증권 전략팀장은 “가격 변동이 심한 농산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이 6개월째 3.0%를 웃돌고 있는 것은 금리인상 시기가 늦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박 팀장은 “추석을 앞두고 금리를 인상하기 힘들어 이번달에는 동결할 가능성이 높다”며 “시기를 놓친 탓에 한은의 통화정책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