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 간에 물고 물리는 소송전이 점입가경이다. 다른 기업과의 경쟁을 통해 실력을 키워가기 보다는 경쟁자를 아예 시장에서 배제시키려는 선두업체의 전략이다. 특히 후발주자로 나서고 있는 국내 기업의 경우 거액의 배상금 지급, 제품 판매 금지 등 피해가 크다. 최근 코오롱이 특수섬유인 아라미드 원천기술 여부를 놓고 미국 듀폰과 벌인 법정 다툼에서 패해 약 1조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지불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게 단적인 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둘러싼 IT·전자업계에서도 경쟁자를 궤멸시키려는 선두업체의 공세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애플, 스마트폰·태블릿PC 시장 건들지마=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스마트폰·태블릿PC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애플은 지난 4월 부터 삼성전자, HTC 등 후발주자에 대한 강도높은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무려 8개국에서 20여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는 태블릿PC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큰 경쟁자들의 추격 의지를 없애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미 삼성전자는 한 차례 타격을 입었다. 삼성전자의 태블릿PC 갤럭시탭 10.1의 독일 내 판매·마케팅 금지가 확정된 것. 독일 뒤셀도르프 지방법원은 지난 9일 갤럭시탭 10.1의 판매·마케팅 금지 가처분 결정에 대한 삼성전자의 이의 신청을 기각했다. 갤럭시탭 10.1은 지난달 15일 이 법원이 애플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이미 독일에서 판매·마케팅이 중단된 상태. 애플은 소송을 제기하면서 갤럭시탭 10.1이 아이패드2의 디자인을 베꼈다고 주장했다.
뒤셀도르프 법원이 이번에 애플 측 손을 들어줌에 따라 향후 상급심에서 이번 결정이 뒤집어지지 않을 경우 갤럭시탭 10.1의 독일 판매는 원천봉쇄 된다.
더 나아가 독일 법원이 갤럭시탭 7.7에 대한 마케팅 활동도 금지하면서 삼성전자는 IFA2011 전시장에서 해당 제품을 철수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오랜 휴대폰 사업 경험을 토대로 한 통신기술력을 바탕으로 애플에 특허소송을 제기하며 반격에 나선 상황이다.또 갤럭시 시리즈가 애플의 아이폰, 아이패드의 디자인을 베꼈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는 1968년작 SF영화인 '201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태블릿PC와 유사한 형태의 기기가 등장하는 장면을 증거물로 제시했다.
삼성전자 뿐 아니라 애플이 제기한 특허 소송에 계속 시달려온 HTC도 구글로부터 9건의 특허를 매입, 애플이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제소하며 반격을 가했다.
◇오스람, LED 조명 시장 건들지마= 그동안 특허와 관련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지만 독일 조명업체 오스람이 올해 삼성과 LG를 상대로 발광다이오드(LED) 관련 특허 소송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오스람과 오스람의 자회사인 오스람 옵토 세미컨덕터는 지난달 24일 서울지방법원에 삼성과 LG를 상대로 LED 특허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오스람은 해당 기업들이 자사의 ‘백색 미 표면실장형 LED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허가되지 않은 제품에 대한 사용 금지도 요청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삼성과 LG를 상대로 미국 지방법원과 독일에서 특허침해 소송을 진행했으며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도 LG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는 수입 금지를 신청했다.
지난달에는 LG이노텍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한국무역위원회에 관련 제품의 수출 금지를 요청했다. 오스람은 삼성, LG 등 두 기업이 한국 특허심판원에 자사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권 주장에 대해서도 무효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오스람이 이처럼 특허소송 전쟁에 뛰어든 이유는 빠르게 성장 중인 삼성과 LG의 LED사업이 더 크기 전에 무너뜨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최근 국내 LED 업체들은 삼성LED와 LG이노텍을 중심으로 글로벌 LED TV 시장에서의 선전하고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한국의 LED 생산량은 지난해 세계 2위. 지난해 매출액도 2007년 대비 3배 늘었다. 여기에 최근 삼성LED와 LG전자가 출시한 단돈 1만대의 보급형 LED 조명이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오스람의 위기감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지식재산보호협회 관계자는“세계적으로 지식재산 중요성이 커지면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양상으로 진행된다”며 “특허분쟁에 대응할 수 있는 공격·방어·협상 등 스마트한 전략이 기업에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