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관찰 옥석 가리는 곳
“무조건 살려달라” 요구땐 난감
그러나 이같은 시선을 애써 무시해야 하는 부서가 있다. 바로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기업개선부다. 은행마다 부서 명칭과 업무 범위에 차이가 있지만 부서명 그대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주관하는 곳이다.
“몇 년 전, 김치 공장을 운영하던 사장이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찾아왔는데 당시 회사 상태를 검토한 후 방안이 없어 냉정하게 거절했죠. 사장을 돌려 보낸 후 밖으로 영업을 나갔는데 지점 직원으로부터‘사장이 자살을 기도하고 있다’고 연락이 오더군요.”
A은행 기업개선부 P부장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급히 달려가 사장을 설득해 자살 기도는 막았지만 자금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업개선부가 얼마나 냉정한 부서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기업개선부는 기업을 관찰한 후 옥석을 구분하는 곳이다. 자력으로 살아나기 힘든 기업은 사형선고를 내린 후 은행이 주도권을 갖고 회생절차에 들어간다. 기업이 망해 은행에 손실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 경제가 돌아가는데도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부실징후가 포착된 기업에게 기업개선작업을 제의하는 것도 힘든 업무 중 하나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구조조정 없이도 회생할 수 있다”며 은행의 제안을 거절한다. 냉혹한 현실을 외면한 채 경영자의 자존심만 내세우는 것이다.
B은행의 S부장은“대기업이 특히 버티려는 경향이 짙은데, 시간이 갈수록 경영이 어려워져 결국 은행 제안을 받아들인다”며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 10곳 중 9곳이 잘했다고 하는데 그 전까지는 은행과 기업간의 미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기업 개선작업은 기업과 은행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은행과 은행의 업무이기도 하다. 한 업체가 특정 주채권 은행에 일방적으로 쏠려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채권은행들 간에 눈치싸움도 있다. S부장은 “주채권은행이 채권비율이 낮은 은행들이 알기 전에 몰래 개선작업을 실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나면 시장에서 이미지가 안좋아질 수 있기 때문에 수면 아래서 개선작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나의 기업을 ‘살리기도 죽이기도’하는 개선부. 내년 경제 상황이 힘들것이라는 전망에 한 숨부터 나올 뿐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금까지 영업을 유지해온 업체들도 쓰러질 것 같다는 얘기가 많다”며 “시장의 안정이 중요한 만큼 부실징후 업체가 많지지지 않는 것이 취우선이겠지만 만약 발생할 경우 워크아웃 작업 설득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