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업자가 비료값을 감당하지 못해 키우던 소를 굶어 죽게 할 수밖에 없었다면 동물을 학대했다는 죄를 물을 수 있을까. 이 같은 문제를 두고 정부와 축산농가가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며 대립하고 있다.
전북도청에 따르면 농림수산식품부는 키우던 소를 굶겨서 죽게 하고 방치한 농장주인을 대상으로 동물보호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라는 내용을 지방자치단체에 시달했다. 이를 두고 농장주인을 포함한 농민들의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사건은 소를 키우는 축산 농가의 살림살이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진 데서 출발한다. 전북도는 사료값 상승을 감당하지 못한 농장 주인 문씨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료량을 점차 줄이다가 최근에는 물밖에 주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40여년간 소를 키운 문씨는 한때 150마리가 넘는 소를 사육했으나 최근 1억5000만원의 빚을 질 정도로 경영이 급격히 악화했다.
지난해에는 논을 팔고 각종 보험 등을 모두 해약해 빚 가운데 1억원 가량을 갚았으나 밀린 사료 대금 5000만원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노후를 포기한 셈이다. 문씨도 소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축협을 탈퇴하면서 받은 100만원까지 탈탈 털어 풀 사료를 샀고 동물보호단체가 보내준 사료 100포대도 쪼개서 소에게 먹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죽했으면 자식 같은 소를 굶기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참혹한 농가 현실을 외면한 채 법을 잣대로만 판단하고 있다”며 “사람은 굶어도 기르는 짐승은 굶기지 않는 법인데 오죽했으면 자식 같은 소를 굶겼겠느냐”고 말했다.
현행법은 동물에 대한 위해방지 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3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위반 행위를 지속하면 동물 학대로 간주해 500만원의 벌금을 물리고 있다. 소식이 알려지자 문 씨에게 죄를 물을 경우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그는 더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된다.
언론 등을 통해 소식이 알려지자 곳곳에서는 소가 아사한 원인이 소 값 폭락과 사료 값 급등인데도 정부가 책임을 농민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이광석 의장은 “농식품부의 근시안적 판단에 기가 찰 노릇”이라며 “정부는 축산농민들의 회생을 위해 사료자금 지원확대와 사료구매자금 상환 연장 등 대책부터 마련하라”고 지적했다.
전북 시·군의회 의장단협의회도 성명서를 통해 “이번 사태의 본질은 소 값 폭락과 사료 값 폭등으로 불가피하게 벌어진 참극”이라고 규정하고 “농장주에 대한 조사를 즉각 중단하고, 구제역 파동과 한미FTA 등으로 상처 입은 축산농민의 민심을 헤아려 구체적이고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사진=동물사랑실천협회 홈페이지 동영상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