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커피 애호가였다.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베베르 공사의 처형인 독일계 러시아인 손탁의 권유로 처음 커피를 접한 뒤, 수시로 세자인 순종과 함께 커피의 향을 즐겼다고 한다. 허나 고종은 좋아하던 커피로 인해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위기를 넘겨야 했다. 1898년 하늘 높은 줄 모를 정도로 세도를 부리던 역관 김홍륙이 권력을 잃고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되자 이에 앙심을 품고 보현당 창고지기인 김종화 등과 모의해 고종과 세자가 즐겨마시던 커피에 독약을 타 넣었던 것. 다행히 고종은 한 모금 머금었을 때 이상한 냄새 때문에 곧 뱉어내서 위기를 넘겼지만, 세자 순종은 이를 목구멍으로 넘겨 이가 모두 빠져 18개의 의치를 해야만 했다. 이 사건으로 김홍륙과 공범인 공홍식, 김종화는 참수형에 처해졌고 그들의 시체는 순검들이 바지를 잡고 종로바닥을 질질 끌고 돌아다녀 백성들의 구경거리가 됐었다.
그동안 방대한 역사 지식과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불멸의 이순신’ ‘나, 황진이’ ‘방각본 살인사건’ ‘열하광인’ 등의 주목할 만한 역사 팩션을 선보여 왔던 작가 김탁환은 이 고종독살 음모사건에 이야기꾼 다운 상상력을 덧붙여 경쾌한 사기꾼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서 고종독살 음모사건의 주모자인 김홍륙의 일화를 보고 영감을 얻은 김 작가는 그 인물 옆에 러시아의 광활한 숲을 얼빠진 귀족들에게 팔아치우는 희대의 여자사기꾼이자, 고종황제의 아침 커피를 직접 내리는 조선 최초 바리스타 ‘따냐’를 창조해 냈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러시안 커피처럼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맛있는’ 이야기 ‘노서아 가비’를 만날 수 있다. 평범한 역사적 사건에 불과했을 ‘고종독살 음모사건’을 김 작가는 한국소설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캐릭터‘따냐’를 창조해냄으로써 박진감 넘치고 읽는 재미가 살아 있는 ‘개화기 유쾌 사기극’으로 탈바꿈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