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제부가 최근 발표한 ‘2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의 결과를 보면 유통업체에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이 자료에 따르면 백화점 매출은 작년 같은 달에 비해 2.9% 늘었다. 언뜻 보면 백화점이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함정이 있다.
올해 2월은 설 명절이 없어 지난해보다 영업일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영업일수가 늘면 당연히 매출이 증가하는 것인데, 사실 2.9%면 늘었다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 백화점 사람들 얘기다. 지경부는 명품 사재기가 백화점 매출 증가에 한몫했다고 했지만, 신장률 ‘8.2%’는 사실 이전에 비해 턱없이 낮은 것이다. 백화점 명품 매출은 매달 두자릿수 이상 성장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는 더 심각하다.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무려 6.4%나 매출이 줄었는데, 아무리 대형마트의 성장이 정체기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면 아주 심각하다. 내용도 좋지 않다. TV 등 대형 가전제품은 물론, 의류, 식품 등 모든 상품군에서 10%대의 마이너스 신장률을 보였다. 뭐하나 장사를 제대로 한 게 없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 감소는 이를 운영하는 기업에 이중의 부담을 안긴다. 수수료로 먹고사는 유통기업은 물론, 입점업체, 입점업체의 하도급업체 등의 연쇄적인 실적 부진을 낳는다.
실적이 부진한 것은 기업의 책임이 크지만 그렇다고 기업만 질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느 정도의 원인 외부에 있다면, 그리고 그 외부가 정부나 정치권라면 책임소재가 분명해진다.
2011년 내내 정부와 정치권은 대형유통업체 때리기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그 중 가장 힘을 쏟은게 입점업체에 받는 판매수수료를 낮추는 것이었다. 공정위에 검찰에, 전방위 압박에 기업들은 순종해 수수료율을 낮췄다. 유통기업에서 수수료율을 낮춘다는 것은 바로 매출감소를 의미한다. 당연히 유통업체들은 이를 보전하기 위한 긴축재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도 대부분 유통기업이 광고홍보비를 비롯한 마케팅 비용을 크게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케팅 비용이 줄면 판매가 부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올해 들어서는 자치단체들이 나서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영업일수까지 관리하겠다고 한다. 이미 전주를 비롯한 일부 지방 자치단체에서 월 2회 의무 휴무 조례를 제정해 시행 중이다.
서울시도 25개 전체 자치구에 5월부터 일요일과 공휴일 중 월 2회 의무휴업을 하도록 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내려 보냈고 지자체들은 이 권고안을 따르겠다고 화답했다. 실제로 각 자치구가 조례를 지정해 시행하게 되면 331개(대형마트 64개·SSM 331개)에 달하는 점포 중 292개가 주 2회를 쉬어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렇게 되면 연간 3조원이 넘는 매출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나 지자체가 대형 유통업체 판매수수료나 영업일수까지 간섭하고 나서는 것은 명분이 ‘중소상인(기업) 살리기’라고 하더라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체인스토어업체가 직업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 차별이라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지만, 이와 별도로 ‘위기’의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한국의 유통산업은 아직 성장해야 할 명분이 있다. 테스코나 월마트 등이 세계적 기업으로 제조업체를 지배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유통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 대부분은 유통산업의 규모가 제조업의 규모와 맞먹는다. 우리나라는 아직 제조업체가 유통업체의 위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언젠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공개석상에서 ‘대한민국도 유통업체가 제조업체보다 우위에 있는 시대가 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선진국형 구조로 가기위해서는 유통산업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유통산업의 위기는 누가 키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