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 끝나면 정부의 ‘두더지잡기식 물가대책’은 더이상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총선이후 가격인상 품목은 더 확대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가격인상→정부압박→인하→수익반토막 = 풀무원식품은 지난해 12월 두부, 콩나물 등의 10개 품목 153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7% 인상하려고 했으나 정부의 압박에 7시간만에 철회했다. 그러는 사이 풀무원식품의 지난해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42억원, 104억원으로 전년대비 53.3%, 59.8% 감소했다.
롯데칠성음료도 지난해 11월18일 설탕, 캔, 페트 등 원부자재 및 포장재 구입 가격 상승과 인건비, 유류비 등 판매 관리비의 급등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주요 음료 품목에 대해 4~9% 정도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하지만 불과 열흘 뒤 인상안은 철회됐고 오히려 가격 인하 발표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11일 카스 등의 출고가를 7% 가량 인상키로 발표한 OB맥주도 사흘 만에 가격인상을 철회하면서 수익압박에 시달려야했다.
식품업계 고위 관계자는 “이들 세 업체의 인상안 발표 직후 정부의 물가 대책회의가 이어졌고 대책 회의 후에는 어김없이 업체들의 가격인하 발표가 나왔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결과적으로 보면 가격을 잡는데는 성공했지만 작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에 달할 정도로 물가 잡는데는 실패했다”고 말했다.
◇올 들어 분유·커피·화장품 등 잇따라 인상 = 총선을 기점으로 ‘정치 이슈로 만들어진 물가인하 이벤트’가 끝나고 다시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거세다. 실제로 원재료값 인상 등으로 제조원가 상승 압박에 시달려온 주요 업체들의 가격인상이 진행되고 있다.
맥도날드가 지난 2월 주요 품목에 대해 6% 가량 가격을 올렸고 뒤따라 버거킹도 햄버거 10종의 가격을 평균 4.7% 인상했다. 필립모리스코리아도 지난 2월10일부터 자사 일부 브랜드 제품의 가격을 평균 6.79% 올리기로 하면서 국내 담배업체인 KT&G를 제외한 담배 업계가 일제히 가격을 올렸다.
SPC그룹의 던킨도너츠는 올해 들어서자마자 커피 가격을 9.8% 인상했고 가격인상에 실패했던 풀무원식품은 지난 2월 칼국수면과 스파게티면 등 면류 6가지 제품에 대해 평균 8% 가격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분유업계에서는 일동후디스가 2월 ‘산양분유’의 가격을 인상했고 남양유업도 분유제품의 가격을 7%대로 인상했다.
화장품업계는 수입화장품 브랜드가 가격을 올리면서 국내업계도 가격인상에 동참하고 있다. 수입 화장품 브랜드 랑콤·SK-II·키엘·슈에무라·크리니크 등은 적게는 4%에서 많게는 10%까지 인상했고 에스티로더·바비브라운 등도 지난달부터 최대 14% 가격이 올랐다. 국내 대표 한방화장품인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도 지난 1일부터 가격을 인상했다.
국내 유통업체들의 이같은 가격인상 움직임은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적이 반토막나는 등 수익압박이 심한 상황이여서 정부의 물가안정 노력에 협조한다는 취지로 인해 더 이상의 백기는 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월 소비자물가가 2.9%대로 20개월만에 ‘최저’를 기록했지만 식료품, 의류, 주택, 교통 등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품목들의 물가는 오히려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정부가 재정을 풀어 ‘지표상 물가’를 낮춘 것에 불과해 4월 총선 이후 물가는 다시 들썩일 가능성이 크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무리하게 억눌렀던 가격이 총선 이후 봇물 터지듯 오를 것”며 “달래고 압박만 한다고 해서 물가는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