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자살 신드롬…잡초의 삶 배워라

입력 2012-04-30 09:32 수정 2012-05-02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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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남 경희대학교 교수

우리 사회에는 지금 자살의 음습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자살의 어두운 그림자는 남녀노소, 세대, 빈부를 가리지 않고 있다. 자살은 이제 우리 주변에 늘상 있는 일처럼 치부되어 어디서 누가 자살하였다 하여도 특별히 충격적이거나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없으면 크게 놀라지도 않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살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진 것 같다. 자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흔히 있는 일 정도로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 자신도 자살을 가장 친근한 선택으로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통계청 자료를 이용하여 1924년~1978년생의 자살률 증감을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1986년부터 2005년 사이에 우리나라 남성은 98%, 여성은 124%나 자살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06~2007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여성의 자살증가율이 1위, 남성의 자살증가율은 2위로 기록되었다. 한국자살예방협회는 우리나라 10~30세 사이의 2010년 사망원인 중 자살이 1위의 원인이라는 조사결과도 발표하였다. 이 자료들은 다른 OECE국가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자살이 급등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젊은 연령층의 자살이 심각한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죽음이란 무릇 인간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하지만 자살은 이 죽음을 자신에게 인위적으로 부과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자살은 자신에 대한 살인행위이다. 자살은 천리에 대한 순응과 유종의 아름다움이 없다. 근래에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자살을 보면 대부분 현실의 어려움에 직면하여 삶의 의지를 잃고 어려움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죽음에도 분명 어떤 의미가 있겠지만 정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만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안타깝고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실 자살이란 편리한 현실 도피의 수단이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의 짧은 고통만 넘기면 세상일로 고통받을 일이 없을 것 같이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에게 굴욕을 당할 일도, 아쉬운 얘기를 할 일도, 괴롭힘을 당할 일도 없을 것이다. 속된 세상의 번잡한 책임과 의무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다. 이런 안락의 세계를 희구하여 야무진 용기를 내는 모양이다. 그러나 자살은 분명히 극도로 무책임한 행동이다. 인연으로 얽혀 사는 인생살이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자기만의 도피처를 추구하는 극히 이기적인 행동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세상살이가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인생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해서 사는 것이냐고. 어느 소설에서 읽은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래서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하지 않는가. 험한 세상을 사노라면 힘든 일, 굴욕스런 일도 많고, 하기 싫은 일도 많다. 하지만 자살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이다. 자살을 결행할 수 있는 그 무서운 용기와 결단력을 가지고 잡초와 같이 현실의 어려움에 맞설 생각을 해볼 수는 없는가?

잡초란 어떤 존재인가? 아름다운 외모를 갖지 못해 난초처럼 칭송받지 못하고 곡식처럼 우대 받지 못해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주류에 속하지 못해 천대 받아도 신세타령을 하는 법도 없다.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슬퍼하지 않고 따가운 햇볕 아래서도 시들지 않으며, 매서운 추위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가꿔주지 않아도 스스로 살아남고, 사람과 동물의 발에 밟히고 괭이로 찢겨나가도 놀라운 생명력으로 다시 일어선다. 가뭄이 들어 목이 마르면 단비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어둠이 내리면 머지않아 찬란한 태양이 떠오를 때가 있다는 것을 알며, 차가운 눈에 덮여도 눈은 결국 녹고 말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뒤에는 따사로운 봄날이 있다는 것을 안다. 잡초야말로 진정 기다림과 인내의 철인이요, 놀라운 생명력의 화신이다.

우리는 잡초에게서 배워야 한다. 특히 자살의 유혹에 이끌리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신만의 평화와 안락을 찾아 떠나면 당신은 이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큰 고통을 안겨주는 나쁜 행위이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야 말로 사실 가장 큰 욕심이다. 그런 이기적 욕심을 버리고 당신이라는 존재를 던져 당신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조그만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만약 버팀목이 될 수 없다면 그들의 방석이 되고, 젓가락이 되고, 그것도 안되면 이쑤시개가 되어주자. 그것마저 어렵다면 그저 곁에 있어만 주거나 말없이 바라봐 주기만 해도 좋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한 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더라도 잡초처럼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그냥 그런대로 한 세상 사는 것도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밟히고 천대받고 찢겨나가도 불굴의 생명력으로 되살아나는 잡초를 보라. 어디 자살을 꿈엔들 생각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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