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우면 치마 길이가 짧아진다고?”
여성의 노출과 관련된 경제계의 오랜 속설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남성들이 이성들을 바라볼 여유가 없어진다. 여성들은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더욱 도발적인 노출을 시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는 아름다움을 표현할 액세서리 구매조차 쉽지 않아 자신의 몸 자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심리적 욕구가 증가한다는 설도 있다. 단순하게는 불황기엔 옷감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는 것이라 주장된다.
이러한 속설에 반박하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마브리’는 1971년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아지면 주가가 오른다는 치마길이 이론(Skirt-length theory)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경기가 호황이던 1920년과 60년대 뉴욕 여성들은 짧은 치마를 주로 입었고 1930년 대공황때나 1970년 오일쇼크 등 경기불황엔 치마 길이가 길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여성의 노출은 경제학 담론의 중심에 등장할 정도로 경제사회적 변화의 흐름과 함께 그 의미와 역할의 부침을 겪어왔다는 점이다. 그 본체 이상의 다양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함의(含意)하는 현상으로 자리잡으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게 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몸에 대한 관념이 큰 전환점을 맞은 것은 1970년대다. 이때부터 미니스커트나 꼭 끼는 옷을 입어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는 패션이 유행했다. 더는 대담한 노출은 ‘난잡함’의 표시가 아닌,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의 수단이 됐다. 사회적인 규제 차원을 벗어나 개인의 의지이자, 선택이 된 것이다.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인식의 변화는 아름다움의 중심에 ‘몸’을 가져다 놓았고 드러내 보이려고 몸을 가꾸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사회학자들은 여성의 다리 노출 역사를 ‘여성해방사’라 해석하기도 한다. 허벅지가 드러나는 치마의 등장은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여성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더는 수동적이지 않는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평가다.
노출에 대한 ‘열린 생각’은 정치적·사회적 의사표현으로까지 그 역할이 확대되기에 이른다. 정봉주 전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비키니 1인 시위, 야한 옷차림이 강간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성범죄의 불합리한 정당화를 비판하며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는 ‘잡년행동’의 퍼포먼스 등이 최근의 예다. 이러한 의사표현을 위한 당당한 노출은 유쾌 발랄한 저항으로 인식되고 있다. 많은 네티즌들은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온몸으로 주장하는 모습이 멋지다”라며 박수를 보낸다.
노출은 인간의 본능과 직결돼 있기에 상업화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베일 벗은 영화 ‘후궁’, 노출수위 올해 19禁 중 최고”“유인나, 가슴골 속옷 노출사고…과감히 벗었다”. 최근 온라인에서 가장 ‘핫(hot)’한 뉴스 제목이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나 영화 개봉작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노출수위의 한계에 도전한다. 여자연예인들은 스스로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노출 방송사고를 감행하는 노이즈 마케팅도 서슴지 않는다. 위험하지만 대중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더없이 달콤한 ‘악마의 유혹’같아서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김종갑 소장은 노출이 다양한 의사표현의 매개체로 떠오른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김 교수는 “전통적인 성 역할의 변화, 동성·양성애자 등장 등으로 현대인들은 상대적으로 바뀌지 않는 몸에 대한 과시를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 그는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출이 ‘타자’의 노출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 김 교수는 “‘하의 실종 패션이 대세’라는 등의 유행에 휩쓸려 너도나도 짧은 옷을 즐겨입는 것은 가장 개성적이어야 할 노출이 타자의 시선에 감염된다는 것”이라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