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정부과천청사 앞 운동장에는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소 3마리가 쓰러질 듯 위태롭게 메어 있었고 대형트럭에서는 아직 내리지 못한 6마리의 소와 동물실천협회원 그리고 이들을 막기 위해 출동한 경찰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 죽어가는 소 9마리는 왜 전북 순창에서 머나먼 이곳 과천까지 오게 된 것일까.
지난 1월. 전북 순창의 한 농장에서는 농장주가 사료를 주지 않아 소 30여 마리가 굶어 죽은 사실이 동물사랑실천협회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 농장은 육우와 젖소 등 160마리의 소를 사육하고 있었지만 80마리는 판매하고 팔리지 않은 80마리는 사료 값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했다. 결국 배고픔을 참지 못한 소 40여마리는 그대로 굶어 죽었다.
실천협회는 이 같은 소 아사 행위에 대해 공개하고 농림수산식품부와 순창군에 동물보호법상의 동물학대 행위임을 지적하며 농장주와 소를 격리 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격리조치는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루어 지지 않았고 순창 소들은 서서히 죽어나갔다. 정부의 무성이한 태도에 실천협회 측이 순창 농장에서 살아남은 소 25마리 중 9마리를 농식품부가 위치한 정부과천청사로 데려온 것이었다.
순창 소 아사 사건의 경우 30~40마리의 소가 굶어 죽는 상황이 지속됐지만 정부는 해당 농장주가 가끔 사료를 제공하고 소를 죽일 고의가 없다고 판단해 격리조치 하지 않았다.
당시 농식품부 방역총괄과에 근무했던 안유영 사무관은 “위해방지 조치 명령과 과태료 부과 방안을 순창군과 협의했지만 농장주는 사료비가 없기 때문에 소를 굶겨 죽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며 “(당시)순창군에 위해행위에 대해 시정조치 하고 불이행시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고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농장이 위치한 순창군 관계자의 말은 농식품부 측 주장과는 상반됐다. 순창군은 지난 1월 소가 굶어 죽는 상황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해당 행위가 동물보호법상 학대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농식품부에 여러차례 문의했다고 주장했다.
순창군 관계자는 “당시 농식품부는 소에 대한 사료가 공급과 중단을 반복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동물학대 행위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며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 등에 의한 격리조치는 시·도지사가 할 수 있기에 사실상 순창군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고 변명했다.
◇ ‘있으나 마나한’ 동물보호법
이번 소 아사 사태에 대해 농식품부와 순창군은 농장주에 대해 형사고발 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고발위기에 놓인 농장주 문모(56)씨는 자신은 억울해 했다.
문씨는 “검은소(육우)가격이 이 정부들어 너무 떨어졌다. 지금 빛만 5000만원이 남았다. 모두 이 사태를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하지만 대책은 없다. 사료 살 돈이 없어 사료를 주지 못한 것일 뿐인데 소문이 잘못나 ‘소 죽인 놈’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면서 그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무서워 외부 출입도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물사랑실천협회 박소연 대표는 동물보호법에 나와 있는 법조차 정부가 지키지 않았다며 법 적용을 하지 않은 정부가 소들을 죽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서는 동물에 대해 갈증 및 굼주림을 겪거나 영양이 결핍되지 않도록 하라는 동물보호 기본원칙이 정해져 있지만 이는 권고사항에 불과해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에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다만 법은 동물학대 등의 금지 조항을 두고 △목을 매다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 △ 노상 등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거나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행위 △정당한 사유없이 죽이는 행위에 대해 금지하고 있을 뿐이어서 이번 사건과 같이 고의성이나 금전적 문제로 동물을 죽게 방치할 경우는 명확한 조항이 없기 때문에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
또 농식품부는 동물보호법에 규정한 동물학대 방지와 구조 등 동물복지에 관한 동물복지위원회를 운영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구성되지 않았다.
한편 농식품부는 지난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순창 소 아사 사건은 동물학대라는 결정을 내리고 해당 지자체에 농장주를 형사처벌하고 소들을 격리조치 할 것을 순창군에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