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가도에서 불법이민자 정책이 핵심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30세 이하의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추방조치를 중단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는 16세가 되기 전에 미국으로 불법 입국해 최소 5년 이상 거주하면서 현재 학교에 다니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30세 이하의 외국인은 추방의 위험에서 벗어나며 일자리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민을 위해서 해야 하는 올바른 정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 정치권은 그러나 선거판세를 바꾸고 히스패닉 표심을 겨냥한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이번 방침을 해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일련의 ‘악재’로 선거 캠페인 전략에 시련을 겪었다.
실업률이 8.2%대로 상승한데다 위스콘신 주지사가 소환선거에서 패배했다.
유럽 경제위기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고 “민간분야 경제가 잘 굴러가고 있다”는 오바마 자신의 실언까지 겹치면서 궁지에 몰린 것이다.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최근 경제지표 발표 후 “오바마는 민심과 동떨어져 있다는 증거들”이라고 비판했다.
오바마 진영으로서는 재선에 ‘빨간 신호등’이 켜진 셈이었다.
이 상황에서 전격적인 이민자 정책의 발표는 오바마로서는 국면을 전환시키는 공세적인 카드로 볼 수 있다.
불법이민자 문제는 그동안 정책적 합의가 여의치 않은 논란거리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008년 대선때 공약으로 어릴 때 불법 입국한 외국 출신의 군 복무자나 학생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한 포괄적인 이민개혁법안인 이른바 ‘드림 법안(DREAM Act)’의 입법을 약속했다.
그는 그러나 공화당의 벽에 부닥쳐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불법이민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히스패닉은 오바마가 이 법안의 추진에 정치적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는 듯하자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던 터였다.
히스패닉의 지난 2008년 대선 때 오바마 지지율은 67%에 달했다.
첫 흑인 대통령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표밭이 히스패닉으로 표심의 이탈은 오바마 재선의 커다란 걸림돌일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불법이민자 추방조치’ 중단에 대한 정책을 발표하자 대다수 히스패닉은 환영했다.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드림 법안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자였다.
공화당내에서는 히스패닉표를 감안해 드림 법안에 대한 반대의 톤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쿠바계 혈통인 마르코 루비오 플로리다 상원의원이 그의 러닝메이트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도 히스패닉과의 거리를 좁힐 필요가 있다는 당내 여론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의 반대로 드림 법안의 입법 가능성이 낮아보이자 대통령의 행정적 권한을 활용해 히스패닉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우회로를 택했다.
법적 논란을 감수하고 정치적 결단을 내린 셈이다.
백악관은 이번 조치로 80만의 젊은 히스패닉들이 혜택을 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주로 ‘스윙 스테이트’로 분류되는 플로리다·네바다·콜로라도·뉴멕시코·버지니아 등은 히스패닉 계열 인구비중이 많다.
이번 정책은 중요 주의 민심을 되돌릴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시민들이 불법이민자들에게 국내 일자리를 빼앗기게 되고 경제불황에 불법이민자들을 부양해야 하는 재정적 부담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보수 진영은 “미국민보다 불법이민자들을 더 우대하느냐”며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전문가들은 오바마 진영이 이번 정책이 전체적으로 대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판단에 따라 강행했다고 분석했다.
롬니 진영은 히스패닉의 여론을 감안해 이 정책 자체에 비난을 자제하는 양상이다.
롬니 측은 “이번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하고 보다 근본적으로 이민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선에서 대응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