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일주일 전, 어머니를 따라 재래시장을 찾는다. 어머니는 큼지막하게 써놓은 ‘국내산 참조기’라는 팻말이 있음에도 다시 한번 물어 확인하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조기 먼저 꺼내어 깨끗이 손질해 바람이 잘 드는 그늘진 곳에 펼쳐놓으신다. 앞으로 하루가 지나면 뒤집고 그 다음날이면 다시 뒤집어 앞뒤로 꾸덕꾸덕하게 잘 말랐는지 몇 번을 확인하실 것이다. 냉장고 문을 여니 과일 칸에 신주단지 모시듯 고이 쌓여있는 과일들이 보인다. 명절만 되면 과일 가격이 금값이 되는 시세를 잘 알고 있는 어머니께서 미리 장만해 놓으신 것이다. 배, 사과, 곶감 등 상처가 없고 모양이 예쁜 놈으로 한 개 한 개 신중히 골라 담으셨을 모습이 그려진다. 베란다의 커튼을 걷자 화분들은 귀퉁이로 옮겨지고, 그 자리엔 소쿠리에 담긴 약과, 산자, 밤, 대추 등의 차례음식들이 대신하고 있다. 베란다까지 변화가 찾아온 것을 보니 명절이 벌써 내일모레로 다가왔음을 알게 된다.
명절 하루 전, 이른 아침 부은 눈을 비비며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가족들이 오기 전에 마쳐야 한다는 어머니의 재촉에 못 이겨 속도를 내어본다. 이미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어머니는 근처 마트에 다녀오겠다며 또 집을 나선다. 부엌을 들여다보니 갈비는 물에 담겨 있고 식탁에는 양념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오후가 되자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들은 동태전, 녹두전, 동그랑땡, 꼬치 등 각종 전들을 만들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한쪽에서는 준비 된 재료에 부침가루와 계란을 차례로 입히고 다른 한쪽에서 중불과 약불을 오가며 익혀내 가지런히 채반에 담아놓는다.
명절 당일, 새벽녘부터 부엌은 분주해진다. 차례상이 펼쳐지면, 요리된 고사리, 숙주나물, 닭찜, 산적, 조기, 갈비들이 차례차례 부엌에서 나온다. 엄숙히 차례를 마치고 가족들은 차례상에 둘러앉아 아침식사를 한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그간의 서로 못다한 얘기들을 나누며 웃느라고 추석의 식사 시간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시끌벅적 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어머니가 앉아계신다. 어머니의 흐뭇한 미소를 보니 이번 명절도 잘 끝났음을 알 수 있다.
설과 추석, 제사까지 따져보면 매 년 몇 차례의 이 시간들이 반복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소홀히 여기지 않으시고, 매 번 시간과 정성을 쏟아가며 준비하신다. 힘드시지만 어머니 스스로 당연하게 받아들이셨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헌신 덕에 우리는 ‘명절’이라는 단어에 설렘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이 달로 다가온 추석이 기다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