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장 삼성·SK하이닉스 위주 재편… 애플과 관계도 변화
애플과 반도체 제조사간의 역학구도가 대등관계로 바뀌고 반도체 가격을 무기로 한 치킨게임이 사라지면서 반도체 시장 구도가 변하고 있다. 이를 놓고 업계에서는‘쌍권’(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SK하이닉스 권오철 사장)이 승리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치킨게임을 딛고 시장 지배력을 강화시킨 국내 반도체 공급업체들이 가격경쟁 탈피에 나서면서 막강한 구매력으로 가격 결정권을 좌우하던 애플의 힘이 약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게임의 룰을 바꾼 것은 권오현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전자와 권오철 사장이 이끄는 SK하이닉스다.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 반도체 사업 매출 8조7200억원, 영업이익 1조1500억원을 거뒀다. SK하이닉스는 한 분기 만에 적자로 돌아섰지만, 그 폭은 15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영업손실 규모는 95%나 줄었다.
이들 국내 반도체 업체의 실적은 대만과 일본 업체들과 비교할 때 극명하게 대조된다. 일본 엘피다를 인수한 마이크론은 시너지를 내지 못하며 5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대만 이노테라 역시 3분기 1500억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며 11분기 연속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만 난야는 연말까지 600명을 구조조정한다고 발표했고, 프로모스도 1300여명을 정리해고할 계획이다.
반면, 치킨게임 승자가 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단가하락에 잠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메모리에 각종 솔루션을 접목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속속 내놓고 제값 받기에 나서고 있다.
권오현 부회장은 지난 9월 중국 반도체 공장 기공식에서 “반도체산업의 글로벌 시황이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절대로 적자를 내지 않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권오철 사장도 최근 “반도체가 점점 더 고부가가치 제품이 되가면서 기술 장벽도 높아지고 생산을 위한 투자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기 때문에 공급을 무한정 늘릴 수 없다”며 승자독식 시대가 올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자, 애플과 반도체 제조사간의 파워게임에도 변화의 조짐이 오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애플과 아이폰5용 낸드플래시 공급 계약을 새로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자사가 제시한 구매 가격을 삼성전자가 받아들이지 않자 아이폰5 초도 물량에서 삼성전자 메모리를 배재했다. 그러나 최근 낸드플래시 공급 부족이 계속되면서 결국 애플은 삼성 반도체 구매에 나섰고 가격도 높여줄 수 밖에 없었다는 관측이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비메모리반도체 전용라인으로 건설 중인 화성 17라인 투자를 잠정 보류한 것도 반도체 제값 받기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신제품이 쏟아지면서 모바일프로세서의 수요는 폭증할 전망이지만, 시장 수요에 즉시 대응하기 보다는 생산량을 조절해 공급자의 힘이 구매자보다 더 세지는 시장구조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업체 입김이 ‘슈퍼갑’ 애플에게도 작용했다는 것은 이전 분위기와는 확실히 달라진 점”이라며 “삼성전자 뿐 아니라 SK하이닉스 등 제품경쟁력을 갖춘 다른 업체도 애플과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