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로 무대가 넓어진 국내 대기업에 외국인 직원들이 활약하고 있다. 과거 외국인 임직원의 채용이 핵심 기술이나 마케팅 노하우 전수를 위한 영입차원에서 이뤄졌다면, 이제는 외국인들이 한국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 직접 찾아오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세계무대에서 뛰고 있는 우리 기업에 글로벌 DNA를 심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한국의 방식이 세계의 방식이라는 단방향의 세계화에서, 해외의 우수인재를 직급에 상관없이 채용해 조직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하나로 녹여나가는 ‘양방향의 세계화’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국내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임직원 수가 올해 1000여명을 돌파한 뒤, 현재는 1200여명에 달한다. 미국의 유명 대학 출신 석·박사들을 현지에서 공개 채용하는 것은 물론, 미국 내 대학 재학생들을 인턴으로 선발했다. 이들은 출신 국가도 다양하다. 2000년 초 만해도 소프트웨어 인력이 많았던 러시아·인도 출신 엔지니어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금은 중국·일본·핀란드·프랑스·독일 등 60개 국적의 직원들이 활약하고 있다. 현지인을 주로 채용하는 해외법인 인력까지 포함하면 삼성전자의 외국인 임직원 수는 12만명을 훌쩍 뛰어 넘는다.
외국인 임원들의 활약도 눈에 띈다. 주요 대기업들은 이미 적지 않은 외국인 임원을 일선해 배치했다. 이들은 유명 글로벌 기업에서 연구개발, 디자인, 인사·마케팅 분야을 맡았던 검증된 전문가들이다. 여기에 해외 법인의 법인장도 현지에서 폭넓은 영업력을 갖춘 인물로 속속 전진 배치하고 있다.
성공적인 영입은 기업의 성장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총괄 부사장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는‘K 시리즈’ 디자인을 진두 지휘해 회사의 실적은 물론, 이미지까지 일신시켰다. 독일 폭스바겐그룹의 수석 디자이너를 거친 그는 지난 2006년 기아차에 합류해 한국 자동차업체 최초의 ‘패밀리 룩’을 시도했다.‘세계 3대 디자이너’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이분야에서 뛰어난 두뇌다.
현대차도 지난 10월 프랭크 에이렌스 글로벌 홍보이사를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본사상무로 승진시켰다. 보수적인 사내문화를 가진 현대차로서는 이례적인 인사라는 평가다. 워싱턴포스트지 기자로 18년을 근무한 그는 현대차 글로벌 홍보 부문을 책임지면서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외국인을 임원으로 임명한 회사는 총 85 곳(11.6%)이다. 외국인 임원 수는 총 189명으로, 유가증권시장 전체 임원 1만4862명 중 1.3%를 차지했다. 국적별로는 △일본인 68명(36%) △미국인 56명(29.6%) △인도인 14명(7.4%) △프랑스인 11명(5.8%) 순이다. 외국인 임원들의 직위는 이사가 67명(35.4%)으로 가장 많았고, 사외이사 31명(16.4%), 부사장 19명(10.1%), 대표이사는 12명(6.3%)인 것으로 집계됐다.
삼성은 외국인 직원의 채용 확정부터 국내에 정착할 때까지 모든 사안을 지원해 주는 제도인 ‘글로벌 헬프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다. 비자 발급부터 입사를 위한 모든 것을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돕는다. 더 나아가 한국에 정착하는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체험 프로그램까지 운영한다.
또 계열사별로 외국인 임직원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도 벌이고 있다.
20개국 800여명의 외국인 직원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은 지난 9월 거제조선소에서 ‘외국인 직원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처음으로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 인도·일본·필리핀·스리랑카 등 6개 외국인 직원들이 참가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0년째 한국에 살면서 겪은 경험담과 느낌을 유창한 한국어로 털어놓았다. 삼성전기 역시 11월 본사 수원사업장에서 7개 해외 법인 200여명의 외국인 임직원들이 참가한 ‘글로벌 한국어 한마당’을 개최했다. 또 삼성전자는 ‘SISS(삼성전자 외국인 임직원 부인회)’를 만들고 지난 14일 창단식을 열었다. 외국인 임직원 부인들이 한국생활에 잘 적응하고 소속감을 갖도록 네트워크화한 것 .
외국인을 보유한 다른 대기업들도 국내 근무는 물론 해외 법인의 임직원까지 대상으로 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익힐 수 있는 한국어 강좌 운영, 한국 초청 문화체험, 한국어능력시험 응시 지원 등. 한국 기업과 함께하는 이들의 적응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다양한 국가에서 온 외국인 임직원들의 입맛과 종교적인 부분까지 배려한다. 러시아· 중국· 일본음식은 물론 채식까지 제공하는 글로벌 뷔페도 운영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다.
한 대기업의 고위 관계자는 “지난 70~80년대만 해도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해외 핵심인력의 영입은 너무나 절실했다. 일본 경쟁사 엔지니어 집의 문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고, 재일교포를 상대로 ‘조국을 위해 일해달라’고 애국심으로 호소하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는 한국 기업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해외 우수 인력들이 스스로 찾아오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한국 기업의 열정과 노력에 전세계에서 모인 외국인 임직원들의 경험까지 융합하면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능히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