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가 간접적으로 대선을 염두에 뒀다면 최근 새로 개봉한 ‘남영동1985’와 ‘26년’은 모두 1980년대의 암울했던 정치사의 한 부분을 들춰냄으로써 좀 더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소재를 끌어온다. ‘남영동1985’는 지금은 고인이 된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자전적 수기를 영화화한 것.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남영동에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버티려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뤘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장기 독재 정권에 대한 민주화 투쟁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지금 현재의 대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편 이미 강풀의 웹툰으로 잘 알려진 ‘26년’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피해자들이 모여서 그 가해 책임자를 저격하는 이야기다. 이미 오래전부터 제작이 추진되어 왔었는데 몇 차례 정치적 외압으로 무산됐던 이 영화는 올해 관객들이 제작비를 모아서 영화를 만드는 제작두레 방식으로 겨우 빛을 보게 됐다.
그런가 하면 독립영화쪽에서는 훨씬 더 강도 높은 정치색을 드러내는 영화들이 나왔다. 대표적인 작품이 ‘MB의 추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17대 대선 유세 당시의 이명박 후보가 했던 무수한 공약들을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하나하나 정산하는 구성으로 이른바 ‘정산 코미디’라는 장르 타이틀을 달고 있다. 특이한 구성은 당시 이명박 후보가 했던 이야기들을 지금 현재의 시점에 맞춰서 다시 되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지난달 18일에 극장에 걸려서 이미 전국 1만 관객을 넘어섰다. 특이한 건 영화를 걸어주는 극장은 없는데, 영화를 보려는 대중들은 많아서 거꾸로 대중들이 극장을 대관해서 영화를 보는 기현상도 생겼다고 한다. 그만큼 현 정부에 대한 대중정서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대선 전의 이런 정치적인 소재의 콘텐츠들은 늘 있어왔다. 드라마에서는 사극이 늘 대선 직전에 나와 인기를 끌곤 했는데 이것은 대선이 만들어내는 대중들의 리더십에 대한 판타지를 자극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웅시대’ 같은 드라마는 특정 후보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논란이 되기도 했고, 2007년도에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는 대선 5개월을 앞두고 개봉되어 여야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이런 사정은 해외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2004년도 대선을 앞두고 9.11테러의 배후에 부시 정부가 있었다는 음모론을 다룬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개봉되어 엄청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대선이 있었던 올해에는 버락 오바마를 비판한 ‘2016, 오바마의 미국’이라는 다큐 영화와, 그의 치적 중 하나로 꼽히는 오사마 빈 라덴 암살 사건을 다룬 ‘코드네임 제로니모’가 TV로 방영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정치색을 띤 콘텐츠가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화씨 9/11’이 부시 행정부를 그토록 비판했지만 당시 대선에서는 부시가 재임되었고, 또 지난 2007년 ‘화려한 휴가’가 큰 흥행을 거뒀지만 당시 대선에서는 정동영 야권 대선 후보가 참패하기도 했었다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 정치 콘텐츠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런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거기에 대해 대중들이 반응을 보이는 것 속에서 지금의 대중정서를 읽을 수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 대중정서가 진짜 힘을 발휘한다면 영화가 현실에도 어떤 영향을 분명히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결과는 대선이 끝나야 알 수 있을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