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이 제자리걸음인 가운데 유럽 재정위기 이후 경기침체라는 악재까지 겹치며 총저축률이 3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12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저축률(원계열 기준)은 3분기 기준으로 30.4%로 1982년 3분기의 27.9% 이래 가장 낮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졌던 2008년과 같은 수치지만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늘려보면 올해가 30.41%, 금융위기 당시가 30.42%로 더 악화했다.
총저축률은 총저축(개인ㆍ기업ㆍ정부 저축의 합)을 국민 총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총저축률이 낮아지면 국내에서 투자자금을 충분히 조달하기 어려워지고 경기변동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나라의 3분기 총저축률은 `3저 호황'과 올림픽 특수를 누렸던 1988년 41.5%로 통계작성 이래 최고치를 달성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89년 38.1%로 내려앉은 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36.5%까지 떨어졌다. 카드대란 발생 직전인 2002년에는 30.5%까지 하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졌던 2008년 30.4% 이후 소폭 오르내림을 반복하다 지금은 30.4%로 20%대 추락이 코앞에 다가왔다.
장기적인 총저축률 하락세 속에 유로존 위기 이후 경기침체라는 `단기 충격'이 가해지며 리먼 브라더스 사태 때보다 낮은 최악의 수치가 나타난 것이다.
계절조정 기준으로 봐도 총저축률은 올해 3분기 30.1%로 30%선에 간신히 턱걸이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분기(29.7%) 이후 가장 낮다.
이러한 하락세는 개인저축률이 빠르게 감소한 점이 주된 이유다.
총저축률이 최고치였던 1988년 개인저축률은 18.7%로, 총저축률에서 개인저축률이 차지하는 비중(46.2%)은 절반에 육박했다.
그러나 1991년(18.5%)부터 내리막을 거듭해 2011년에는 4.3%까지 떨어졌다. 개인저축률이 작년 총저축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5%에 불과했다.
LG경제연구원 고가영 연구원은 "총저축률 감소는 저축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저축률이 떨어지면 자본투입이 감소해 미래 성장률을 잠식한다"고 설명했다.
연평균 가계소득증가율은 1980년대 17.0%, 1990년대 11.9%, 2000년대 5.9% 등으로 둔화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제 소득증가 정도는 이보다 낮다.
3분기 국민처분가능소득(원계열)은 전년 동기 대비 2.5%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09년 2분기(1.7%)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계절조정 기준으로는 전기에 비해 -0.3% 감소했다. 2008년 4분기(-1.5%) 이후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하고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난 점도 저축 동기를 약화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국민총처분가능소득에서 기업의 몫은 점점 커지는 반면 가계의 몫은 심각한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개인저축률이 감소했다"며 "성장으로 파이 자체를 키우되 기업과 가계간 분배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은 "가계저축률 올리려면 빚을 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 경제에는 빚을 권하는 제도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령 사회초년생에게 생애최초 주택마련을 위해 돈을 빌려주는 것은 빚을 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라는 것이라 상당히 좋지 않다"며 "빚을 지게 하는 인센티브를 없애고 저축에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