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를 끝내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송별의 의미로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은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기자들에게 한 말인 동시에 다사다난했던 약 21개월 임기에 대한 소회로도 볼 수 있다. 박 장관은 “섭섭한 점은 잊고 고마운 점은 평생 잊지 않는다는 자세로 앞으로 저도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자신도 그렇게 기억해 주길 바란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최근 박 장관의 가장 굵직한 일정은 러시아에서 열린 G20재무장관회의였다. 이번 회의의 특징으로 그는 “환율정책 논의의 중심에 위안화가 쏙 빠지고 엔화가 왔다”는 점을 꼽았다. 그동안 환율의제가 논의될 때마다 위안화가 쟁점이 됐기 때문에 우리 정부로서는 원화로 파편이 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무마할 수밖에 없었던 반면 이제 전환점을 맞게 됐다는 설명이다.
현 정부 5년의 경제정책에 대해 박 장관은 “제가 객관적으로 평가할 입장은 아니다”라며 “여러 말씀을 듣고 반성하고 다음 정부가 받아서 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론의 평판이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국민의 기대수준이 높았던 것이 있고, 선진국도 그렇고 국민이 워낙 똑똑해지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시각을 밝혔다.
떠나는 박 장관은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최대한 말을 아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5대 국정목표에서 ‘경제민주화’가 빠진 것에 관련해서는 “문패를 달지 않았다고 뭐라고 할 것은 없다”며 “문패만 번지르르하고 외화내빈이 될 수도 있으니 지금 경제 상황도 봐야 하고 어떤 법을 어떻게 하는지를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임기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녹색기후기금(GCF)’ 유치가 결정된 당시를 떠올렸다. 분위기로 봐서는 될 것 같은데 예상보다 결정이 미뤄지면서 조마조마했던 기억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카타르 총회 직전에 결정하자는 쪽으로 가는 것인지 몇몇이 이의를 제기해 조마조마했다”며 “갑론을박이 일어날지 온갖 생각이 다 들다가 결정이 돼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국회의 예산 심의 과정에서 여야의 지출확대 요구에 밤을 새워 협상하고 대응했던 일은 “상당히 힘든 일”이라고 술회했다. ‘쪽지예산’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호텔방 예산심의’에 대해 그는 “우리의 예산심의 시스템은 좀 더 손을 봐야 한다”며 예결특위가 거시적인 지침을 만들면 각 상임위에서 세부적인 사항을 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출범 2개월을 정부세종청사가 자리를 잡기 위한 방법으로 박 장관은 “업무운영시스템을 (개선하는 방안을) 많이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도 수상행사 참석차 서울로 향하는 박 장관은 “훈장을 받는 사람은 대통령, 총리, 장관에게 받길 원하는데 그런 기대를 충족하면서도 왔다갔다하지 않아도 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퇴임 이후 본업인 교수로 돌아간다. 재직 중인 성균관대에서 재무행정과 재정관리 등을 가르치게 된다. 그는 현재 가장 큰 고민이 “학교 강의에 차질을 빚는 것”이라고 했다. 새 정부 출범이 늦어지면서 학기 시작에 스케쥴을 맞출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3월 1~3일 있으니 만약 안 된다면 한 주는 (어쩔 수 없고) 그 안에는 끝나겠죠”라고 말했다.
새 정부의 내각에 가운데 재직 중인 성균관대 출신 대거 내정된 것에 대해 그는 “한 번 실패를 맛본 분들이 많고 해서 마음속에 겸양이 몸에 녹아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내정자, 곽상도 민정수석 내정자, 이남기 홍보수석 내정자 등에 대해 그는 “다 아는 분인데, 박 당선인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튀지 않고 정숙하고 평판이 좋다’”고 말했다.
한편 박 장관은 지난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청와대 비서실과 장관을 거치며 5년간 ‘MB노믹스’를 이끌어 온 주역이다. 정권 초기에는 대통령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수석의 역할이 크고 정권 후반기에는 ‘손과 발’이 되는 장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박 장관은 정권 초기에는 수석을 역임했고 이후 장관으로서 정책을 직접 집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