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신경영 20년]양보다 질…“1등이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

입력 2013-06-0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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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등 ‘월드베스트’ 제품 8개… 연계 매출 13배·수출 규모 15배 껑충

1992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64Mb(메가비트)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첨단 IT기술의 집합체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해내지 못한 하나의 기적이었다. 64Mb D램은 신생 반도체 업체를 세계 1위로 부상시킨 혁신의 주역이 됐다.

반도체 분야 1위를 달성한 삼성, 그리고 이를 진두 지휘한 이건희 회장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이듬해 이 회장을 중심으로 한 선진 사찰단은 일본과 미국에 이어 유럽시장 조사에 나섰다. 대대적인 대규모 현장 조사였다. 선진국의 산업을 두루 살핀 이 회장은 마침내 독일 프랑크프루트에 도착해 대대적인 혁신안을 발표한다. 바로 오늘날 삼성을 만들어낸 ‘신(新)경영 선언’이었다. 바로 20년 전인 1993년 6월 7일이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하면서 삼성은 21세기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시작한다. 1997년 이건희 회장이 취임식에서 삼성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삼성블로그)

◇경영의 중심을 ‘양’이 아닌 ‘질’로 이동 = 신경영 선언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해봐야 1.5류다. 한 마디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

기업 총수가 대대적 경영혁신을 위해 토해낸 절박한 발언이었지만, 당시 시대상을 감안할 때 이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이 발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회장의 말 한 마디에서 시작한 삼성의 도약은 거침이 없었다. 21세기 삼성을 만들어낸 첫 단추는 그렇게 시작했다.

이후 삼성은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21년 동안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다. 반도체 분야에서 1위를 고수하면서 삼성 구성원들에게는 ‘1등이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철학이 서서히 쌓이기 시작했다.

야심차게 출발한 휴대폰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신경영 선언 이듬해인 1994년, 반도체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던 삼성은 향후 엄청난 성장이 기대되는 휴대폰 사업에 진출했다.

당시만해도 미국 모토로라가 휴대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때. 예상대로 시장은 녹록지 않았다. 11.8%라는 높은 불량률이 이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대대적인 전환점은 1995년 경북 구미사업장이었다. 이 회장은 관련 임직원들을 불러 놓고 불량 휴대폰 15만대를 모아 불을 붙였다. 이른바 ‘휴대폰 화형식’이었다.

이 회장은 동시에 삼성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신경영 선언은 곧 경영의 중심을 양(量)이 아닌 질(質)로 옮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2011년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에서 개최된 ‘메모리 16라인 가동식’ 에서 이건희 회장이 임직원들을 격려하며 악수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신경영 20년… 매출 13배, 수출 15배로 = 신경영 선언과 함께 시작한 삼성의 20년 도약은 수치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삼성의 연계매출은 1993년 29조원에서 2012년 380조원으로 13배 늘었다. 수출규모 역시 107억 달러에서 1572억 달러로 15배나 증가했다.

그 사이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출시하는 제품은 신경영 선포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1등 자리를 꿰찼다. 역대 ‘월드베스트’로 꼽힌 삼성전자의 제품은 총 9개. 이 가운데 8개가 신경영 선포 이후 나왔다.

“멈칫하면 우리는 도태된다”며 잘 나갈 때일수록 위기론을 강조한 것도 이 회장의 추진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삼성의 휴대폰 브랜드 애니콜은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51.5%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후 애니콜의 인기는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휴대폰 시장의 트렌드가 스마트폰으로 완전히 바뀐 현재 삼성은 ‘갤럭시S 시리즈’를 앞세워 세계 1위로 올라섰다. 휴대폰의 절대강자 노키아, ‘아이폰’으로 스마트폰 전성시대를 연 애플은 한때 삼성이 넘볼 수 없는 경쟁자였으나, 이들은 현재 삼성의 기술과 디자인, 다양한 제품 라인업에 밀리며 1위 자리를 내줬다.

▲지난 31일 이건희 회장이 부인 홍라희 여사와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제23회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남다른 인재론, ‘명문대=대기업’ 등식을 깨다 = 삼성의 신경영은 단순히 제품만을 바꾼 것은 아니다. 이 회장은 삼성의 기업문화에도 거침없는 변화를 주문했다. 전 세계 시장에서 일류기업으로 인정 받으려면 일하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선대에서 이어진 인재론을 더욱 강조했다.

먼저 1995년부터 3급 신입사원 공채에서 학력 제한을 없앴다. ‘명문대=대기업’이라는 공식도 이때 깨졌다. 전 세계가 무한경쟁 시대로 가는 상황에서 대학 졸업장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실력이라는 게 이 회장의 판단이었다. 여기에 30대 부장, 여성인력, 고졸, 장애인, 특수분야 전문인력 등을 과감히 임원으로 발탁해 ‘열린 인사’를 전격 시행하기도 했다.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회장의 철학에 따라 2002년에는 국가적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삼성장학재단을, 2013년에는 새 정부 정책에 맞춰 창조경제형 인재를 키우고자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을 설립했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글로벌 최고 기업으로 올라선 삼성의 지난 20년. ‘신경영 선언’이 기업경영의 바이블로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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