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올림픽 정식종목 자격 있나요? [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3-06-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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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남긴 유서(사진=뉴시스)
얼마 전 믿기지 않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태권도 관장인 전모씨가 ‘자신의 아들과 제자들이 오랫동안 편파판정 피해를 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입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이더군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참으로 참담한 현실에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고인이 된 전씨의 유서에는 ‘3회전 50초를 남기고 5대1로 벌어지자 경고를 날리기 시작한다. 결국 경고 7개, 단 50초 동안. 경고패 당한 우리 아들, 운동을 그만두고 싶단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스승이자 아버지였던 전씨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아버지이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부정한 권력 앞에선 굴욕적인 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억울하게 무릎을 꿇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도 항의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무능한 자신의 모습이 용납되지 않았나 봅니다.

이번 편파 판정 논란을 불러온 심판은 결국 태권도계에서 제명됐습니다. 대한태권도협회는 또 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전국 심판등록제 실시, 불공정한 판정 신고센터 설치, 경기 지도자 공청회 개최, 경기 규칙 개정을 통한 경고·판정 기준 구체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네티즌은 해당 심판의 제명과 현실적이지 못한 방지책에 분개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평가 받아야 하는 어린 선수들의 한 가닥 희망마저 무참히 짓밟히는 모습을 보고 누가 분개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더구나 한 사람의 무고한 생명까지 앗아갔으니 당연합니다.

사실 태권도 편파 판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더군요. 2004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씨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과거부터 편파 판정이 비일비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편파 판정의 희생양이었다더군요.

다른 운동도 아니고 한국의 국기 태권도가 그랬다니 부끄럽고 놀랍습니다. 태권도는 우리에게 어떤 운동입니까. 도장 출입 때마다 국기에 대한 예를 표하고, 승패를 떠나 상대방을 예로써 존중하는 무예입니다. 어릴 적에는 하얀 도복만 입어도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태권도는 세계인들에게 ‘코리안 가라테’로 불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태권도가 한국 고유의 무예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렸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는 정식종목 채택이라는 기적과 같은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우리 사범들의 헌신적 노력과 외교 전략이 뒷받침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태권도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됐습니다. 물론 태권도는 2020년까지 올림픽 정식 종목 잔류가 확정된 상태입니다. 레슬링을 비롯해 야구, 소프트볼, 스쿼시 등은 단 하나만을 남겨둔 올림픽 종식 종목 채택을 놓고 온힘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일부 종목은 오랜 전통과 경기 룰까지 바꿔가며 올림픽 잔류를 노리고 있습니다.

반면 태권도는 세계화 전략에는 성공했지만 오랜 병폐와 내부 갈등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앞으로 더 큰 시련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감춰졌던 태권도계의 오랜 관행과 병폐가 고인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이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태권도계에 만연한 병폐를 뿌리 뽑아야죠. 제2, 3의 선량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게 바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자격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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