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는 국가 권력이다. 이러한 사법부가 절대 권력화 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 국민의 신뢰는 사라지며, 판결의 권위는 떨어질 것이다. 결국 사법부는 ‘법과 정의의 파괴자’가 되며 존재 이유 자체가 사라진다.
‘대법원을 넘어서’의 저자 박찬은 우리 사법부의 절대 권력화를 지적한다. 저자는 “판사들이 진실에 기초하지 않고 허위 사실을 토대로 판결한 부분이 많다”며 “사법부는 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여겼고 믿었던 것은 허상(虛想)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이 지적하는 사법부의 문제는 저자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 1998년도 대우그룹의 감사로 재직한 저자는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며 10년 간 소송에 휘말렸다. 대한투자신탁(대투)이 대우의 무보증회사채를 매입했다가 분식회계로 인해 손해를 봤다며 저자를 비롯해 김우중 대우 회장 등 임원과 외부 감사인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1심에서는 원고의 손해와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승소했으나, 2심에서는 인과관계가 인정돼 패소했다.
저자는 법원판결의 불공정한 부분에 주목한다.
원고인 대투는 저자 재임 시 재무제표였던 ‘1998 회계연도 재무제표’를 믿고 대우 무보증회사채를 매입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당시 공시된 1998년 재무제표는 신용평가기관의 신용평가가 없어 원고가 재무제표를 참고해 무보증회사채를 매입하는 것은 법규를 어기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하지만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은 ‘1998년 재무제표’가 투자에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법은 불법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클린 핸드(Clean hand)의 기본 법리를 무시하고 법규보다 상식을 우선시해 판결했다”고 지적했다.
해당 사건을 겪은 저자는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재무제표 감사는 외감법에 의한 외부감사인과 상법에 의한 감사가 중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법상 감사는 회계 전문가도 아니고 회사가 충분한 인력을 배치해 주지도 않아 상법상 감사의 재무제표감사는 신뢰성이 낮다는 것이다. 즉, 회계 전문가인 외부감사인의 단일감사 체제로 재무제표감사를 하도록 상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저자는 “재판 진행과정을 볼 때 판결 선고의 연기가 너무 잦았고, 재판은 늦게 진행됐으며,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판결을 했다”며 “이 사건을 맡았던 서울고법판사들은 공정하지 못했고, 대법원 역시 공정한 판결에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법원의 오류는 이 사건에만 적용될까? 저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답한다.
“법원은 판결 실수는 물론 전관예우, 제 식구 봐주기 등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또 대법원의 경우는 판사 1인 당 재판 건수가 한 해 3000여건에 달해 제대로 판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법관의 부담이 재판의 신속성을 해치기도 한다. 이에 재판의 공정성에 대해 67.2%에 달하는 국민들이 불신하고 있다. 우리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법과 정의’를 수호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다.”
저자는 사법부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판결문을 공개해 감시 기능을 강화하면 전관예우나 유전무죄 무전유죄식의 판결이 사라질 수 있다. 또 대법관 증원 및 선임방식 개혁, 상고심에 대하여 재판도 하지 않고 기각시켜 버리는 심리불속행제도의 개선 등 대법원의 혁신도 필요하다.
대법원 정문 앞에는 ‘자유ㆍ평등ㆍ정의’란 글이 새겨져 있다. 대법원의 판결 목표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 목표와 실상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사법부가 궤도를 벗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는 사법부를 다시 제자리로 돌릴 때다. 권력은 또 다른 권력에 의해서 견제를 받을 때 올바른 권력이 될 수 있다. 국민들이 사법권 견제에 나서야 한다. 국민들의 감시와 함께 사법부 스스로도 바로 서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3심제의 마지막 관문인 ‘대법원을 넘어서’는 권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재판 진행 당시 저자는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사법부가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워야 하는 부분이다.
“사법권력이 힘없고 조용한 민초의 주장이라 해 정의와 진실을 외면한 판결을 하면서 사법부의 권위를 세우려 한다거나 국민의 신뢰를 강요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어리석은 짓이다.”